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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찾아온 죽음도 웃게 만드는 유머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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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러스트=강일구]

깐깐한 반(反)자본주의자 스콧 니어링(1883~1983)은 100세가 되던 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존엄사를 택했다. 부인 헬렌 니어링이 지켜보는 가운데 1983년 8월 24일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 정도 내공은 도인이나 고승(高僧) 반열에 들어야 가능할 듯한데, 의외로 세상에는 설마 하던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직장 동료의 장모님도 그런 경우다.

 장인·장모는 유달리 의가 좋은 부부였다. 장인어른이 2005년 9월에 암으로 먼저 세상을 뜨셨다고 한다. 다음해 들어 장모님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시켜 드렸지만 하루 만에 “집에 가고 싶다”며 퇴원하셨다. 자식들에게 “너희들을 번거롭게 만들기 싫구나”라며 남편이 타계한 날에 맞춰 자신도 세상을 뜨겠다는 뜻을 밝혔다. 슬하 7남매는 난리가 났다. 가족회의를 거듭한 끝에 어머니의 의지를 받아들이기로 어렵게 결정했다. 노인은 한 달 가까이 곡기를 끊고 진통제와 진통제를 삼키기 위한 물만 드셨다. 자식들과 며느리·사위들을 불러 평생 수집한 서화(書畵) 작품들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마지막 1주일은 혼수상태로 지내다 돌아가셨다. 2006년 9월, 장인이 돌아가신 날의 딱 하루 전날이었다. 자식들은 모친의 뜻을 받들어 부모 제사를 한날 지내고 있다.

 품위 있는 유머로 자신의 죽음을 장식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로 알려진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유명한데, 사실 이 번역문은 잘못된 것이라 한다.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 머물 만큼 머물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이라고 해야 정확하단다(이윤재·이종준, 『영어에세이 상식사전』). 일간지 더 타임스는 유머·위트의 달인이자 채식주의자였던 버나드 쇼의 죽음에 대해 “장례식 행렬에 염소와 소, 양 떼가 울면서 뒤를 따랐다”고 썼다. 신문의 유머 감각도 만만치 않았다.

 그제 본지 2면에 실린 미국 여성 제인 로터의 경우는 또 어떤가. 지난달 시애틀타임스에 실린 로터의 부고 기사는 바로 로터 자신이 쓴 것이었다. 기사는 “말기 자궁내막암으로 죽어가는 것의 몇 안 되는 장점은 바로 내 부고를 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로 시작한다. “부고량이 길어지면 시애틀타임스가 부과하는 광고료도 많아지니 이만 생략하겠다”는 농담도 빼놓지 않았다. “나는 삶이라는 선물을 받았고, 이제 이 선물을 되돌려주려 한다”고 고백한 61세 유머 칼럼니스트의 마지막 유머가 미 전역을 울리고 웃겼다.

 죽음 앞에서의 의연함과 품격 있는 유머는 서로 통한다. 죽음도 삶의 일부일진대, 그들의 지나온 삶이 진지하지 않았을 리 없다. 범인(凡人)으로선 따라가기 힘든 경지이지만,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흐뭇해진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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