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으로 만들어도 한 편만 히트하면 영화산업과 그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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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월하의 맹서』(1921년 윤백남 제작·감독)를 효시로 60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 나라 영화제작업은 지금 부도와 도산의 위협에 마주서 진통하고있다. 영화제작업은 금광·증권과 함께 가장 투기적인 사업의 하나. 그러나 4∼5편의 제작에 실패해도 1편만 히트하면 만회할 수 있는 투기적 특성 때문에 한번 맛을 들인 제작자는 쉽사리 이 사업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55년 국산영상에 대한 면세조치를 계기로 본격화한 영화제작업은 59년을 전후해서 양적으로 피크에 도달했으나 60년의 면세조치 철폐, 62년의 새 영화법 제정에 따라 많은 군소업자가 정리되는 진통을 겪었다.
지난 10년간의 실적은 59년에 1백9편이던 연간 제작편수가 69년에는 2백29편을 기록, 10년간에 편수 기준으로 1백10%의 성장을 보였는데 이는 기중 전체산업 성장율 3백74%에 월등히 못 미치는 거북이 걸음의 성장이다. 방화의 수출은 57년에 처음으로 4편, 59년 2편이던 것이 64년 87편으로 상승했다가 68년에는 24편으로 떨어졌으며 69년에 1백38편(39만5천8백불)으로 다시 급상승하는 등 어지러운 움직임을 보여 주고있다.
우리 나라의 영화제작업이 성장산업의 대열에 서지 못하는 이유는 영화제작업이 사양화의 길에 들어섰다는 세계적인 추세이외에도 남의 돈만으로 사업을 하려드는 제작자들의 안이한 경영자세, 제작과 배급이 일원화되지 못한 불합리한 유통구조, 그리고 최루탄으로 표현되는 내용의 저질 등에 있다.
대개 1편에 1천만원이 드는 비용(개런티 약 4백만원)을 제작자는 지방흥행사로부터 입도선매식으로 미리 받아 제작에 착수한다. 이럴 때 기반이 약한 제작자는 감독·배우·작품내용에 이르기까지 흥행사의 요구대로 선정해야 하는 것이다.
흥행사의 전도금은 현금 아닌 3∼4개월, 혹은5∼6개월 짜리 연수표. 제작자는 연수표의 기일이 올 때까지 충무로 일대에 산재한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최고 월 3할까지 가는 소위 달러돈을 얻어 쓴다. 1천만원 전액을 흥행사에서 조달하고 중간에 고리채를 쓰면 몇 달 걸려 영화1편을 제작했을 때 지불된 이자만도 3∼4백만원에 이른다.
이런 고통을 겪더라도 영화1편을 제작해서 서울시내 개봉극장에서 관객 5만명 이상만 동원하면 밑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국내의 관람료 수입 이외에 외화수입 코터 수배를 통한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업에는 또 눈에 안보이는 적자 요인이 있다. 영화인들의 낭비벽이다.
호사스러운 배우들에 둘러싸여 제작자는 명색이 전주라는 체면 때문에 정신없이 돈을 낭비하는 기분파 생리가 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다.
문공부에 등록된 제작업자는 모두 22개사. 46년의 6개사에서 출발, 50년(6·25) 1개, 55년 15개, 59년 71개, 63년 6개, 66년 26개, 67년 12개, 70년 22개로 제작업자의 수는 늘었다, 줄었다 무상한 부침상을 보여준다.
요즘은 가장 실력 있는 업체로 알려져 있던 세기상사가 영화제작부를 해체하고 지방극장의 공매공고를 냈으며 태창영화사는 지난 1월, 한국 신우사는 2월에 각각 부도를 냈다. 소규모이기는 하나 합동영화, 일천한 신창흥업 등이 그런 대로 공신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
우리 나라의 영화제작업은 전혀 무망한가.
수년간 영화제작에 관계해온 L씨는 우리 나라 영화제작업자의 타인자본 의존도가 90% 이상이라고 전제하고 제작비용의 절반만 자기자금을 들이고 자금관리를 잘하면 아무리 못해도 10% 이상의 순익을 얻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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