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씨의 「한국 현대시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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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무모한줄 알지만 썼습니다. 약게 작품만 쓰는 편이 유리할는지 모르지만 모두 털어놓는게 좋을 것 같아 이론을 늘어 놨습니다』-. 시인이 시론을 써낸 변이다. 금년 3·1 문화상을 받은 박두진씨 (55)는 지난 30일 국판 4백67면의 방대한 「한국 현대시론」을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 현대시의 정의와 가치를 말하고 또 딴 시인의 작품에 대한 의견과 자작시 해설을 곁들였다. 말하자면 시인이 쓴 현대시에 대한 임상적 진단이다.
시인이 시론을 쓰는 것이 외국의 경우처럼 흔하지 않은 우리나라 시단에서 본격적인 체험기록을 전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 그는 1952년부터 지금까지 시작의 틈틈이 써온 시론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20년간의 시론을 단면적인 수상에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 하나가 한국시의 과거와 현재 및 미래를 정리된 눈으로 분석하고 또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론의 주요한 부분은 『민족시, 민족시인』이고 또 책 전체에 흐르는 저류가 곧 민족시에 대한 그의 지론이다.
『한국의 시는 우리말, 우리전통, 우리사상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형식은 비록 서구 것을 빌었지만 한국의 현대시는 민족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시의 출발 당초는 물론 발전과정 및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고 우리의 사상과 저항정신을 토로하며 우리의 정서적 특질을 나타내는 것이 곧 한국시의 모습입니다.』
이 시론은 우리나라의 시를 세계 사조나 시의 일반적 개념에 입각하여 본 것은 아니다. 대의적 관찰이 아니라, 내적 체험을 통해 한국시의 체질을 진단해 본 것이다.
박씨는 무국적의 시를 혐오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시가 결코 협의의 민족주의로 국한되거나 극단의 복고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가 들고 있는 대표적 민족시인은 한용운 이상화 홍사용 변영노 이륙사 김소월 김영랑. 『그들이 처한 시대에 높은 시의 수준과 또 생활자체가 민족적으로 보아 흠 없는 투철한 사람』이란 점이 선정 기준이다.
그 시대를 진실하게 저항하며 산 사람들이다. 『정당하고 가치 있는 한국시는 민족적 동기에서 우러난 것이지, 향락 삼아 노래한 것이라면 시의 존립의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시는 60년 동안에 많이 달라졌고 지금은 훨씬 난해 해져가고 있다. 과거의 습관적인 서정시로는 날로 전개되는 현실을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관을 표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내적 묘사는 기성개념으로 이해 될 수 없어 일반적으로 시를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박씨는 이번 저서에서 적지 않게 그러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을 관찰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늘의 문젯점을 짚어 봄으로써 앞으로 시 세계를 내다보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시는 사회풍조나 소설처럼 병들어 있지 않고 도리어 순수하고 건전한 의식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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