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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청와대서 만난 노 대통령 김한길에게 야당에 양보 권유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006년 사학법 대치 정국과 현 정국을 빗댄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의 트윗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인 이사진에 개방형 이사를 4분의 1 이상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사학법 개정안을 단독 통과시키자 야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은 재개정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포함한 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해 4월 29일. 당시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가 조찬을 함께했다.

 ▶노무현=“김 대표님, 이번에는 이 대표 손 들어 주시죠. 야당 원내대표 하기 힘든데 좀 도와주시죠, 양보 좀 하시죠.”

 ▶김한길=“(당황하며 굳은 표정으로) 대통령님, 당 분위기와 완전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노무현=“나도 당 분위기 잘 압니다. 지금 당이 내 말 듣겠습니까? 내 뜻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김한길=“(자리를 뜨며) 저는 당에 가서 보고해야 되겠습니다.”

 이 의원은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당시는 사학법 개정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아 여야가 매일 싸우고 있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이 ‘양보’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나도 순간 당황했다”고 회고했다.

 이 의원은 “그날 두 가지를 배웠다”고 썼다. “김한길 대표에게는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앞에서 당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한 것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정국이 꼬여 여야가 싸울 때 야당의 손을 들어 주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2006년 4월 29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2005년 말부터 2006년 초까지 한나라당 의원들을 이끌고 사학법 개정을 위한 장외투쟁에 나서기도 했었다. 이 의원은 당시 정국 주역들을 모두 실명으로 소개했지만 박 대통령의 이름은 트위터에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이던 시절, 노 전 대통령이 예민한 쟁점 현안을 양보하려 했다는 사실을 이날 갑자기 공개한 것은 박 대통령이 민주당과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과 가까운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은 “경색된 현 상황의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선 청와대가 정치력을 발휘해 달라는 게 전하고자 하는 취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요청은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거부됐다. 김한길 대표의 측근은 “노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바로 의원총회를 소집해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으나 의원들이 ‘무슨 소리냐’며 반대하고 난리를 쳐 양보 얘기는 없던 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원내대표를 그만둘 때(2006년 6월)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거나 비난하기가 인간적으로 어려웠다”고 했다.

 김한길 대표가 자리를 뜬 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손을 이끌고 청와대 관저를 구석구석 다니면서 “이 방은 친구들과 딱 한 번 삼겹살 구워 먹던 방입니다”는 식으로 경내를 다 구경시키고, 헤어질 때 “이 대표님 또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는 일화를 전하면서다.

 대통령과 야당 수뇌부 간에도 스킨십이 필요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새누리당 친이계로 분류되는 조해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원하는 ‘새로운 정치 풍토’를 위해선 지금처럼 합리적이고 대화가 되는 야당 지도부가 힘을 받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고 지적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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