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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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구는 땅이 기름지지 못하다. 그 대신 홍수·지진·한해 등의 위험이 적다. 따라서 사람이 일하면 일할 수록에 생산물도 늘어난다.
이처럼 사람이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서양에선 경험론적인 합리주의의 사고방식이 자라게 됐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숙명론 같은 것만 싹 텄다고 보는 사가가 있다.
더욱이 12, 13세기에 해상 통상이 성행되어 원거리 항해가 일상의 놀음과 같아지자 기술이며 계산 능력이 크게 자라나게 됐다.
이런 연역적인 합리주의와 전자가 합쳐져서 서구의 근대를 생성케 했다는 것이다.
수년 내 고층「아파트」군이 서울의「스카일라인」을을 바꾸어 놓기 시작했고 당국자는 이를 가리켜 우리의 비약적인 근대화를 상징하는 것이라 자랑했다.
그러나 바로 월여전에 준공했던 와우「아파트」가 오늘 새벽 폭삭 가라앉아 4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보도가 전해 졌다.
겉으로만 번드레한 우리네의 근대화 속에 도사려 앉은 반 근대성을 상징하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쳐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와우「아파트」는 처음부터 날림 공사라 하여 말썽이 많았다. 벽이 갈라지고, 물이 새고, 문이 비틀어 지고…하여 말썽도 많았다.
이것은 겨울에 공사를 한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그 원인이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겨울공사라 하더라도 치밀한 계산에 따라 현대적인 공법기술이 구사만 됐었다면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데들라인」에 쫓긴다고 날림공사를 해치운 건축업자의 비 양심이 무엇보다 가증스런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보다도「브리핑·차트」의 수자를 올리기 위하여 날림공사를 강행케 한 당국자의 태도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준공 허가를 낼 때 감독관은 무엇에 눈이 어두웠는지.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에 무너진 제15동은 그나마 안전하다하여 며칠 전 금이 간 14동의 사람들을 피난시킨 곳이었다 한다. 과연 무엇을 보고 안전도를 측정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목격자들의 말로는 건물이 무너지자「콘크리트」가 아니라,「시멘트」의 모래 먼지만 뽀얗게 일어났다 한다. 그런 고층 건물이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서 있었던 게 오히려 기적이었다고 할까.
책을 따지자면 한이 없다. 눈가림 근대화로 아웅한 사람, 눈가림 공사를 마친 사람, 그것을 또 눈가림해 준 사람 그러나 책임은 가려내야 한다. 숱한 천재 지변이 합리주의를 키워내지 못했다면 오늘의 비합리주의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천재지변」을 일으키게 될지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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