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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트랩」서 창백한 심호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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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숨이 막히도록 지쳤던「공포의 밀실」을 벗어났다. 3일 하오 3시 21분 피납 JAL기의 승객들은 감금 된지 72시간 6분만에 맑은 첫 공기를 마시며 자유의 「트랩」을 밟고 내렸다. 승객들은 태양 빛에 눈부신 듯 걸음걸이 마저 휘청거리는 모습이었으나 기쁨의 웃음을 못내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창문으로 엿보이는 납치범들의 얼굴 모습은 이지러진 표정. 승객들이 기체 밖으로 내려서자 먼발치로 구경하던 시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환영했고 승객들은 그저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손을 높이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긴장이 감돌았던 김포공항 주변은 오랜만에 밝은 분위기를 되찾았다.

<석방순간><하오 2시 26분에 왼쪽 문이 열려>
하오 2시 26분 정각 피납기의 왼쪽 문이 자유의 땅, 김포공항을 향해 활짝 열렸다.
가장 먼저 기내에서 나온 사람은 푸른색 제복을 입은 JAL기의 「스튜어디스」.
곧 이어 흰색「바바리·코트」차림의 중년 남자가, 다시 「기모노」(일본의 여자 옷)차림의 여자의 차례로 50여명의 피랍 승객들이 긴 감금 속에서 풀려나 조용한 걸음걸이로 묵묵히 「트랩」을 내려, JAL기 뒤쪽에 대기한 「리무진·버스」에 탔다.
승객들이 내릴 때 문 양쪽에 2명의 납치범이 일본도를 들고 승객을 한 명씩 모두 점검, 입가에 쓰디쓴 웃음마저 띠면서 간혹 『잘 가라』는 듯 등을 두들겨 주기도 했다.
납치범 중 일본도를 들고 나온 자는 「타이」없이 횐「와이셔츠」바람에 안경을 쓰고 시계를 찼는데 이번 JAL기 납치의 주범격인 「우메우찌」로 보였다.
승객이 내리는 동안 「이시다」기장은 조종사 옆 창문을 통해 자유의 땅을 밟는 승객들을 부러운 듯 내다보면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산촌차관에도 협박 안심하라…손짓도>
5O번째로 「스튜어디스」 1명이 다시 내려가자 납치범들은 연달아 밀려나오려던 승객을 일단 가로막고 「야마무라」 정무차관을 빨리 올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이때까지 승객50명,「스튜어디스」4명 등 모두 54명이 1차로 내렸다.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군·경 30여명은 웅성대며 박수를 쳤다..
하오 2시 38분 남아있는 승객들이 다시 밀고 나오려 하자 납치범 2명은 일본도를 휘두르며 이들 승객들을 기체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 2시 11분 황급히 문을 닫아버렸다.
「야마무라」 운수성 정무차관은 때를 맞추지 못한 듯 납치범들이 문을 닫은 7분 후에야 갈색「코트」차림에 검은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이때 「야마무라」차관은 10여명의 일본 대사관원에 둘러싸여 담배를 피우며 무엇인가 귓속말을 약 10분간 주고받았다. 하오 2시 58분 문이 다시 열려 「야마무라」차관은 「가나야마」 일본 대사와 「트랩」에 다가갔다. 이어 일본대사는 밑에 남고 홀로 「트랩」을 묵묵히 올라가 1분 후 기체 안으로 사라졌다.
곧 이어 하오 3시 정각 피납 승객 2진이 내려오기 시작했으며 47, 48명이 불과 3분만에 줄을 지어 내려왔다.
기체 안으로 사라졌던 「야마무라」차관은 피납 승객이 모두 내린 것을 확인한 후 다시 문 앞에 나타나 「트랩」밑에 서서 근심스럽게 쳐다보던 한일 관계자 30여 명과 인사를 나누었으며 다시「리무진·버스」에 오르고있는 승객들을 향해 오른손을 번쩍 들어 흔들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이를 본 몇몇 승객들도 「야마무라」차관을 뒤돌아보며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 밝은 표정을 짓고 마주 손을 흔들어 인질로 잡혀가는 「야마무라」차관의 전도를 기도했다.
작별한 후 「트랩」밑에서 초조하게 바라보며 괴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가나야마」 일본대사에게 오른손을 들어 동그라미를 그려 보이며 『문제없으니 안심하라』는 듯 자신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가나야마」대사가 이 같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납치범 1명은 혹시 「야마무라」차관을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 일본도를 겨누며 간간이 차관에게 무엇인가 지껄여댔다.

<공군지프 안내로 공항 건물 쪽으로>
이 사이 납치범 1명은 버젓이 「트랩」밑에까지 내려와 주한 일본대사관 직원 10여명과 고개를 끄덕거리며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올라갔다.
하오 3시 15분 풀려난 승객들은 「리무진·버스」3대와 세단 5대, 구급차 1대에 모두 나누어 타고 푸른색 공군「지프」의 안내를 받으며 4일 동안 갇혔던 악몽의 「요도」호를 떠나 김포공항 건물 쪽으로 나왔다.
이날 석방된 승객들에 의하면 납치범들은 일본도와 사제폭탄으로 보이는 상자 1개로 승무원과 승객들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내린 승객 동경대 명예교수>
하오 3시 21분 맨 마지막으로 「트랩」을 내린 승객은 동경대학 명예교수 「요시도시·야와라」(길리화)씨. 「도라노몽」병원 원장이기도 한 「요시도시」씨는 그 동안 협심증 환자로 앓아왔는데 「트랩」을 내릴 때 관계관의 부축을 받았다. 이날 「마쓰오」 일본 항공사장 등 JAL의 간부진들은 승객들이 식당으로 가는 김포공항 계단에 일렬로 서서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승객들은 「터미널」앞에서 「버스」를 내려 공항 2층 반도「호텔」 공항 식당으로 올라가며 대부분이 손을 흔들어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나 일부 중년남자들은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애써 웃음을 띠려고 노력하는 표정을 지었다.

<짐부터 먼저 내려|기내 범인들 흉기 들고 오락가락>
낮 12시 40분 「이시다」기장과 「에자끼」부 조종사는 제복과 제모로 말끔히 단장, 자기자리에 똑바로 앉아 처음으로 밝은 표정이었다.
하오 1시쯤 흰 제복을 입은 10여 명의 정비사가 바쁘게 피납기 주변과 밑을 오가며 점검과 정비에 이어 기름공급을 시작했다.
하오 1시 20분 피랍 승객들의 짐이 먼저 풀려 나왔다. 뒷문 앞에 짐차가 1대 대기한 가운데 뒷문이 열리고 납치범들의 것을 제외한 승객들의 「트렁크」「가방」 보퉁이 등이 쏟아져나 왔다.
하오 1시 30분 정비사 1명이 조종사석 옆 창에 다가가 「정비지시」로 보이는 쪽지를 받아 다른 정비사에게 전했는데 이때 「커튼」이 간혹 들추어진 기체의 창을 통해 납치범들이 흉기를 들고 오락가락 하는 모습도 보였다.

<승객 모두 구출된 jal기>
하오 3시 20분 납치범들은 계속 문을 열어놓고 납치범 1명이「트랩」에 걸터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고 있으며 또 1명의 납치범이 「트랩」 밑에까지 내려와 승객들 짐 속에서 자기가방 1개를 찾아 갖고 올라갔다. 이때가 3시 21분.
오랜만에 「요도」호 꼭대기의 빨간 경계등이 번쩍번쩍 켜짐으로써 70여 시간에 걸쳤던 「하이재킹」은 자유의 승리로 끝났다.
한편 「버스」에 탄 승객들은 경비 군경이 손을 흔들며 박수를 치자 「버스」차창을 통해 마주 손을 흔들었고 어떤 승객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도 또렷이 보였다. 이 때가 3시 15분.

<일 의료진 다시 진단>
승객들은 일본에서 온 JAL회사 소속 「야마구찌」(산구)박사 등 3명의 의사, 간호원 2명 등 의료진의 간단한 건강진단을 받았다.
이어 승객들이 공항 2층 식당에서 먼저 「오렌지·주스」로 목을 축이고 간단한 식사를 하는 동안 「하시모도」운수상은 납치 후 석방까지의 한국·일본정부의 교섭경위와 납치범들과의 협상과정을 설명, 『여러분이 무사히 구출 된데 한국정부의 협조가 컸었다』고 말했다.
이날 석방된 승객가운데 한국에 남아 치료를 받을 만큼 중환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환자 맞을 채비 시내 병원·「호텔」>
JAL승객들의 석방 설이 나돈 3일 상오 서울시내 주요병원과 관광「호텔」등은 당국의 연락에 따라 승객들의 석방에 대비. 입원실과 의료진을 비상 대기시켜 놓고 「호텔」객실을 마련해놓는 등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세브란스」병원 측은 2일 밤 JAL 한국지사의 요청으로 별관 4층 입원실에 40개「베드」를 준비해 놓고 의사 10명과 간호원 20명도 대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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