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A급 전범을 열사로 모신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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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윤호
논설위원

일본 중부의 아이치(愛知)현엔 순국칠사묘라는 게 있다. 1948년 극동국제군사재판으로 교수형 당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 7명의 묘다. 사형 당한 전범에게 순국이라니, 그들이 무슨 열사라도 되나. 뒤틀린 역사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미 군정은 형 집행 직후 요코하마(橫濱)의 화장터에서 시신을 소각했고, 유골을 비행기에 실어 태평양에 뿌렸다. 군국주의 잔당들이 A급 전범의 유골을 신성화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변호인 등이 화장터 직원과 짜고 타다 남은 유골 일부를 빼돌렸다. 7명의 유골에서 한 움큼씩 집어 같은 항아리에 담은 통에 뭐가 누구 것인지 구분이 어려워 그때부터 한 통속으로 움직이게 됐다고 한다. 그 유골은 온천장으로 유명한 아타미(熱海)의 고아칸논(興亞觀音)이라는 절에 숨겨져 있다가 58년에야 공개됐다. 순국칠사묘는 60년 그들의 유골을 옮겨 조성된 것이다. 도조 히데키의 묘는 유골이 들어 있진 않지만 도쿄(東京) 조시가야(<96D1>司が谷) 공동묘지에도 있다. 사형당한 나치 전범들의 묘를 볼 수 없는 독일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에게 도조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야스쿠니(靖國)신사라고 답할 것이다. 그를 비롯한 A급 전범들이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47만 명에 달하는 전몰자를 합사해 놓은 야스쿠니엔 어느 누구의 유해나 유골도 없다. 사자(死者)의 명부만 있을 뿐이다. 야스쿠니는 거기에 이름을 올린 이들을 신(神)으로 모신다. 이처럼 야스쿠니는 묘지가 아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야스쿠니를 국가적 종교시설 겸 추도시설로 여긴다.

 같은 패전국인 독일은 어떤가. 그들 역시 군인묘지와 별도로 전몰자 추도시설을 두고 있다.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Neue Wache, 신위병소라는 뜻)’가 그곳이다. 분단 시절 동독 관할이었을 때엔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희생자’를 위한 위령시설이었다. 통일 후 독일 정부는 93년부터 이곳을 ‘전쟁과 전제정치의 희생자를 위한 국립중앙추도시설’로 사용해 왔다. 추도 대상은 폭넓다. 제1차 대전 이후 전사한 독일 병사, 전화 속에서 목숨을 잃은 민간인,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유대인·집시, 나치와 싸우다 죽은 다른 나라 사람들….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독일 병사들도 온전히 추도의 대상에 포함됐지만 주변국이 반발하진 않는다. 그들을 나치와 분리해 전쟁과 전제정치의 희생자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나치가 일으킨 전쟁은 죄악이었다는 자성, 그리고 절대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독일 국민의 다짐이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은 그런 면에서 한참 뒤져 있다.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이들이 여전히 목청을 높이고 있다.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면 종교의 자유라는 엉뚱한 논리로 맞받는다. 어디에서나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추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침략국이라면 피해국의 심정을 헤아려 추도 행위의 보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독일처럼 말이다. 아쉽게도 야스쿠니 신앙이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한, 전범의 묘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일본에 독일식 추도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10여 년 전 시작된 일본의 국립 추도시설 건립 논의도 아직 제자리걸음 아닌가. 물론 일본 전몰자 유족의 피해의식을 모르는 바 아니다. 결과론이지만 그들 역시 패전으로 신산(辛酸)을 겪었다. 다만 그들을 지옥으로 몰고 간 괴물이 내부에서 자라난 군국주의였다는 자각에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일본 정부는 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했다. 일단 사과했으면 그 정신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한다. 사과 따로 행동 따로라면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그 점에서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앞선 사과에 대한 부정이나 다름없다. 그게 정말 일본이 원하는 바인가.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