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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병 2~3일 만에 생명 위협하는 '캠퍼스 킬러 전염병'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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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로 아들을 유학 보낸 이지영(41·서울 서초구)씨. 그는 최근 아들이 유학간 프린스턴대에서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이 집단 발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이씨의 아들은 출국 전에 뇌수막염 백신을 맞았던 것이다. 이씨는 “불과 3개월만에 학교에 머물렀던 5명이 감염돼 뉴저지 보건국이 대학을 특별관리하고 있다”며 “아들이 백신을 맞지 않았다면 지금쯤 노심초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감염병보다 빨리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이다. 건강한 사람도 감기처럼 발열·인후통 같은 증상이 나타난지 불과 2~3일만에 사망할 수 있다.

살아남아도 팔·다리를 절단하거나 뇌손상·시력손실·언어장애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한국에서는 다소 낯설지만 미국·영국·캐나다 등에서는 ‘캠퍼스 킬러 감염병(Killer disease on campus)’으로 불릴만큼 흔하다.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모아니면 도’인 감염병”이라며 “빈도는 낮지만 한 번 감염되면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다.

 

뇌손상·난청·언어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

뇌수막염은 예측하기 까다로운 질병이다. 뇌와 척수를 안전하게 감싸는 막이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돼 발생한다. 바이러스성은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 일주일 정도 쉬면 예전처럼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

 세균성은 다르다. 주로 수막구균·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폐렴구균 같은 세균에 감염돼 발병한다. 감기처럼 고열·재채기·두통·오한 같은 증상을 보이다가 불과 몇 시간만에 상태가 악화된다. 하지만 초기증상이 가벼워 대부분 적당히 약을 먹고 쉬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 방치한다.

 이 교수는 “바이러스성은 괜찮지만 세균성 특히 영유아기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은 진행 속도가 빨라 위험하다”고 말했다. 초기 증상이 나타난 후 10여 시간이 지나면 몸이 딱딱해지고 울긋불긋 발진이 생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환자의 사망률은 10%다. 발병 하루나 이틀 이내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3일 만에 사망할 수 있다. 콩팥·폐·심장 같은 장기가 도미노처럼 마비된다. 뇌출혈로 뇌기능이 손상돼 호흡이 약해진다. 신체 내 출혈로 혈액 공급에 문제가 생겨 팔·다리부터 썩는다. 피부는 심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벗겨진다. 환자의 70~80%는 살아도 치명적인 합병증을 겪는다.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백신 접종이 중요한 이유다.

 이 교수는 “같은 세균성이지만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폐렴구균은 영유아기에 백신을 맞은 경우가 많아 예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을 막지는 못한다. 별도의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입생 집단생활 나흘만에 보균율 4배 급증

접종 대상은 건강한 10~20대 젊은층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세계인구 10명 중 1명이 코 뒤와 목구멍 뒤 등에 수막구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활동이 왕성한 19세 전후 청소년·대학생의 경우 수막구균 보균율이 24%에 이른다.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유병욱 교수는 “수막구균 보균자 모두가 수막구균성 뇌수막염으로 발전하지는 않지만 균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 발병 위험은 높아진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수막구균 감염자 중 3분의 1이 10대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발병자의 70%가 19세 이하 청소년이다.

 수막구균이 유행하는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수막구균은 한 번 유행했던 곳에서 발병률이 높은 경향이 있다. 한국에도 수막구균 보균자가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캐나다·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지역과 달리 크게 유행하지 않는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매년 1000~2000명 이상이 수막구균에 감염되지만 한국은 10명 정도에 불과해 인지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학교나 기숙사·군대·요양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수막구균은 보균자의 기침이나 재채기로 나오는 타액 등 분비물을 통해 전염되거나, 식기와 컵을 같이 쓰는 등의 일상적인 접촉으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을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으로 규정했다.

 특히 집단생활 초기가 위험하다. 1997년 영국 노팅엄대는 신입생 2507명을 대상으로 수막구균 보균을을 조사했다. 학교가 개강한 첫날 수막구균 보균율은 6.0%였지만 그 다음날에는 11.2%, 3일은 19.0%, 4일에는 23.1%까지 빠르게 늘었다. 공동으로 식기를 사용하는 학생 식당을 이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사 첫달 수막구균 보균율은 13.9%다. 이후 한 달 만에 보균율이 31.0%로 2배 이상 늘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뉴질랜드 등에서는 단체생활을 하는 학교에 수막구균 감염 예방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뉴저지·텍사스·펜실베니아 등 16개 주에서는 수막구균 백신접종을 의무화 했다. 또 학교에 따라서는 수막구균성 뇌수막염 백신 예방접종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수강등록이나 기숙사 입주를 제한하기도 한다.

글=권선미 기자 ,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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