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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만에 도로 내린 우유 값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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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영민
경제부문 기자

9일 전국 모든 대형마트에선 한 우유업체의 제품 가격이 반나절 새 롤러코스트처럼 요동쳤다. 오전 10시까지만 해도 1L에 3150원이던 이 회사 우유 값은 오후 들어 갑자기 400원이 뚝 떨어졌다. 4380원 하던 이 회사의 요구르트 제품 역시 어느새 3900원으로 가격표를 바꿔 달았다. 마트를 찾은 고객들이 깜짝세일로 착각할 법했지만 사실 내려간 이들 제품 가격은 전날까지 내걸렸던 이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 것뿐이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우유 가격 인상에 정부가 눈살을 찌푸리자 제조업체가 죄라도 지은 듯 황급히 가격을 환원한 것이다.

 이처럼 우유 값 인상을 막는 과정에서 관계 당국은 시장 원리를 무시한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기획재정부는 유통업체 실무자들을 비공개로 불러 우유 유통구조를 일일이 조사했고, 제조사에는 원가 구조를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또 우유업체 실무자들이 참석한 간담회 자리에 소비자단체 대표를 배석시키며 제품을 파는 유통업체까지 압박을 가했다. 일부 소비자단체도 ‘불매 운동’ 으름장을 놓으며 당국을 거들었다.

 가까스로 우유 값 인상은 막았지만 사실 이런 식의 물가 잡기는 200년 전 전근대 유럽 시대의 가격 통제 기법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당시에도 프랑스 혁명정부는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반값 우유’ 정책을 밀어붙였다. 우유 값을 올릴 조짐만 보이면 누구든 가차없이 체포해 처벌했다. 결국 건초 값도 못 건지는 상황에 몰린 낙농업자들은 젖소들을 줄줄이 도살했고 우유 값은 얼마 안 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우유 값 통제로 꿈틀거리는 서민 물가의 ‘군기’를 잡으려는 정부의 다급한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관치의 힘으로 값을 찍어 누른다거나 여론전을 통해 우유 제조업체들을 구석으로 내모는 것은 접근 방식이 잘못됐을 뿐더러 문제 해결도 안 된다.

 인상 요인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 찍어 눌러봐야 시간만 좀 늦출 뿐 인상 폭만 더 키울 뿐이다. 게다가 이번 제조업체들의 우유 값 인상의 도화선이 된 ‘원유가격 연동제’는 낙농가의 실질소득을 보전하겠다며 정부가 앞장서 받아들인 제도다.

 우유 값을 가지고 자꾸 이슈를 만드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물가불안심리만 자극해 기대인플레이션만 더 올릴 수 있다. 현재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 내외로 물가상승률보다 두 배 가량 높다.

 여론몰이와 가격통제가 시장원리를 이겨낼 순 없는 법이다. 인상 조짐이 보이는 생필품마다 일일이 원가 구조를 파보고 제조·유통업자들을 윽박지를 순 없지 않은가.

김영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