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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먹방’에서 '폭풍흡입' 하는 걸 보는 게 정말 즐거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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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강일구]

이런 얘기를 하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물을 분도 많을 거다. 한데 정말 궁금하다. 다른 분들은 이런 광경을 보는 게 정말 즐거운지. 요즘 TV만 켜면 나오는 ‘먹방’ 얘기다. ‘먹는 방송’이라는 뜻이란다. 실은 오랫동안 TV를 거의 보지 않다가 최근 들어 좀 보게 됐는데, 가장 의아한 게 먹방이다.

 가녀린 여성 연예인이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음식을 밀어 넣고, 양 볼이 미어지는데도 또 밀어 넣는 장면은 이제 익숙하다. 이런 모습엔 거의 반드시 ‘폭풍흡입’이라는 자막이 따라붙는다. 한두 젓가락에 냉면 한 그릇을 비우는 연예인에겐 식신(食神)이라는 찬사가 뒤따른다. 맛있는 음식에 탐닉하는 프로그램은 널려 있고, 음식점 소개 프로그램에선 일반인들도 이들처럼 허겁지겁 먹곤 다 삼키기도 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연예인들마다 인터넷에 먹는 모습을 공개하며 자신이 얼마나 잘 먹는지를 홍보한다. 악동뮤지션의 ‘콩떡빙수’처럼 음식을 주제로 한 노래를 ‘먹송’이라고 한다. 방송은 먹고 또 먹는 얘기로 채워진다.

 물론 방송에 나오는 색다른 음식에 군침이 돌고, 맛있게 먹는 모습에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식욕이야 인간의 본능이고, 맛있는 음식엔 언제나 눈길이 가게 돼 있으니 팔리는 주제임도 분명하다. 나도 날 잡아 ‘짜파구리’를 해 먹었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 먹방에선 ‘폭풍흡입’으로 표현되는 게걸스러움이 칭송받고, 몇 그릇 먹었는지를 자랑하며 양으로 압도하고, 롤러코스터에 앉아 자장면 먹기 게임을 한다. 이에 본능을 억제하라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식욕만큼은 해방구를 찾은 듯한 후련함도 느낀다.

 하지만 본능이 표출되다 못해 음식으로 사람을 학대하는 듯한 가학적이고 무절제한 단계로 달려가는 모습도 보여 불편하다. 먹방은 또 음식이 흔해진 우리 시대의 영원한 주제 ‘다이어트’와도 충돌한다. 한꺼번에 수십㎏씩 체중을 줄인 사람들이 ‘영웅’이 되다시피 하는 시대. 살을 뺐다는 이유만으로도 매체에선 인터뷰를 하고, 경험담을 듣겠다며 귀를 세우고, 살을 빼주겠다는 상품과 프로그램이 산업이 되는 게 요즘이다. 다이어트의 출발은 누가 뭐래도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다. 한데 한쪽에선 음식에 대한 게걸스러움을 찬양하고, 한쪽에선 동시에 그만 먹으라고 질타한다. 이런 모습은 분열적이다.

 먹방은 대세다. 그 관심은 쉽게 꺾이지 않을 거다. 이런 마당에 인간이 인간다운 건강한 사회는 식욕이든 성욕이든 수면욕이든 본능을 표출할 때 절제하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음식을 ‘흡입’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그게 사람과 음식을 대하는 예의라고 주장하는 건 어쩌면 스스로 구태의연한 취향을 증명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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