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와 창 '2李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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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천재들을 울고가게 만든 이창호9단. 그를 가리켜 요즘 중국에서는 '옥황상제가 내려보낸 바둑의 사자(使者)'라 부른다.

이창호가 지난 1월 한달 동안 중국 바둑팬들의 간절한 염원을 연속해 무산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비금도 천재' 이세돌3단 역시 지난 2년간 이창호를 만나 눈물을 뿌리며 돌아서야 했다.

2001년의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전과 2002년의 왕위전 도전기에서 모두 2대3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던 이세돌3단. 그는 바짝 마른 체구임에도 이 패배 이후 5㎏이나 체중이 빠졌다고 한다.

이세돌3단이 한결 성숙한 모습으로 이창호9단 앞에 다시 섰다. 지난 두번의 대결에서도 이창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이세돌이 '소년'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훨씬 신중해진 20세 청년으로 다시 찾아왔다.

무대는 25일 시작되는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전.지난해 8월의 왕위전을 끝으로 무려 6개월여 만에 이뤄진 '적수의 만남'이다. 바둑사에 두고두고 얘깃거리를 남기게 될 '李李전쟁'의 3라운드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적=지금까지의 전적에선 물론 이창호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이9단의 통산 우승 횟수는 무려 1백12회. 그 중 17번이 세계대회 우승이다.

이세돌은 우승이 8회(신예대회 세번 포함)고 세계대회는 단 한번이다. 상대 전적은 이창호9단이 12승7패로 우세하다. 세판 중 두판은 이겨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세돌은 지난해 단판승부인 후지쓰배 준결승전에서 이창호9단을 꺾었고 결승에서 유창혁9단을 꺾어 세계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인상적인 우승으로 인해 연말 바둑문화상에서 이창호9단을 제치고 최우수기사(MVP)가 됐다.

올해 전적은 이창호가 11승1패, 이세돌이 9승2패.

▶기풍=이창호를 이기기 위해선 이창호와 스타일이 비슷해선 안된다. 최명훈8단이나 안조영7단 등의 실패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세돌은 많은 부분에서 이창호와 대립각을 갖고 있다.

이창호의 행마가 뭉툭하고 두터운 이미지라면 이세돌은 사금파리처럼 날카롭고 사나운 이미지다.

이창호가 수비적인 데 비해 이세돌은 공격적이고 이창호가 타협적인 데 비해 이세돌은 전투적이다. 이창호의 승부호흡은 길고 느릿한데 이세돌의 호흡은 속전속결이다.

이창호9단과 이세돌3단의 대결은 언제나 흥분을 동반한다. 이세돌은 MVP 시상식 때 "최우수기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창호9단은 근래 새롭게 득도한 사람처럼 승승장구해 왔다. 과연 이번 3라운드의 승자는 누구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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