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구 지하철 참사] 지하2층 유독가스와 '3시간 사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분소장님 제발 저희들을 구해주세요."

수백명의 승객들이 지하 수십m 아래에서 시시각각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던 18일 오전.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지하 2층 신호기계실에서는 12명의 남녀가 기약없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사진 크게 보기>


1.18일 오전 9시52분43초. 사고 열차가 평소와 다름없이 중앙로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2.오전 9시53분02초. 사고 열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바쁘게 승하차하고 있다.
3.오전 9시53분06초. 타고 내리는 승객 중 앞쪽 중앙에 있는 한 시민이 방화범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4.방화 용의자 김모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몸에 불이 붙은 채 열차 밖으로 나오고 있다(오른쪽 아래).
5.방화 용의자 김씨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붙은 불을 지나던 승객이 급히 끄고 있다.
6.오전 9시53분19초. 중앙로역 승강장이 순식간에 번진 화재 연기로 인해 CCTV 화면이 흐리게 보인다.
7.유독가스가 역 구내에 가득 차면서 CCTV의 작동이 멈춰져 있다. [YTN 촬영]

대구지하철 교대역 신호분소 소속 강화수(35).장윤동(35)씨와 청소용역업체 소속 아주머니들이었다.

이날 아침 신호체계 점검을 위해 중앙로역을 들렀던 강씨와 장씨는 화재가 크게 번지자 불길을 피해 지하2층 신호기계실로 들어섰다. 이어 역무직원들과 청소 아주머니들이 이 방으로 합류했다.

강씨는 직속 상관인 이성옥(45)분소장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다.

李분소장은 "기계실 문틈을 옷등으로 틀어막고 침착하게 기다려라"고 말했다. 역사 구조를 잘 아는 李씨는 신호기계실이 외부와 어느 정도 차단된 공간이어서 구조대를 기다릴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0분 뒤 李씨는 신호기계실에서 가장 가까운 중앙로역 4번출구에 도착했지만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시커먼 매연을 덩어리째 토해내는 출구 앞에서 119구조대원들이 돌격과 후퇴를 거듭할 뿐이었다. 이러는 중에도 지하에서는 구조를 요청하는 전화가 계속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하 직원들의 전화 목소리가 작아지는 느낌에 李씨는 발만 구를 뿐이었다.

지하의 신호기계실에서는 생존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들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청소용 티슈로 문틈을 틀어막고 숨 쉬기 다소 편한 환기구와 배수구 쪽 구석에 교대로 앉아가면서 버티기를 시작했다.

1시간쯤 지나면서 불안감이 짙어지자 이들은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남녀 12명이 서로 손깍지를 끼고 세차례나 뛰쳐 나갔지만 기계실로 되돌아와야 했다. 화염과 연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다.

강씨는 낮 12시가 넘어서도 구조의 손길이 미치지 않자 부인에게 작별 전화를 했다. 임신 6개월인 부인의 건강과 충격 등을 감안, 그때까지 참아 왔던 일이었다. 슬픔을 억지로 억누르고 겨우 통화를 마쳤다.

한편 지상에 있던 李씨는 인근 대구역으로 달려가 동료 직원들과 1㎞ 거리의 지하선로를 달려 중앙로역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바람이 등뒤에서 불어 승산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동수 대구북부소방서장과 황윤찬 구조대장도 이들의 도전을 도왔다.

李씨가 6명의 구조대원들과 함께 신호기계실에 도착한 것은 사고 후 세시간이 지난 오후 1시쯤.

12명 모두 배수구 쪽에 코를 묻은 채 쓰러져 있었지만 병원에 도착하면서 의식을 되찾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