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의 추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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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에 연발한 살인사건들은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동기미상」을 지적할 수 있다. 왜 살인이 저질러졌는지 범인의 추리력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강도라고 하기엔 의문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치정 관계라고 단정할 단서도 희박하다.
또 하나는 피살자 4명중 3명이 여자라는 사실이다. 사건의 열쇠는 모두 이들이 쥐고 있는 식이다. 범죄 원인의 여성화 현상은 주목할 사실이다. 사회의 어느 한 단면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범행현장의 2인중 1인만 피살된 것도 이상하다. 강변로의 총기살인이나, 황금당 사건이 모두 같다. 만일 2인을 모두 살해했다면 사건의 흔적은 더욱 흐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인의 생명을 꼭 남겨놓았다. 고의이든, 아니든 이것은 범죄심리학상 완전 범죄형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평범한 시민의 우발적인 사건인지도 모른다. 이 경우 동기는 더욱 궁금해진다. 왜 그런 사건을 저지른 것일까.
그러나 이 사건들의 원초적인 공통점은 너무도 허무하게 생명을 위협했다는 사실이다. 죽음앞엔 어느 경우나 허무하게 마련이지만 특히 이번 사건을 마치 장난감 처럼 맹랑하게 해 치웠다. 인간이 터무니 없이 내 던져진 것 같은「쇼크」를 금할 수 없다. 인간 생명의 허무한 추락을 목격하는 허탈감 마저 갖게 된다.
사회의 질서를 지탱하는 최후의 힘은 역시 인간존중의 사상이다. 모든 가치의 판단은 오로지 여기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명이 무시되는 사회는 생각할 수 조차 없다.
사회학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범죄는 하나의 사회현상이며, 그 근본적인 방지는 바른 사회의 형성에 있다』는 명제에 귀착한다. 이 명제를 이탈하는 주장은 아직 없다. 또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은「군중속의 한 얼굴」로 전락하고 있다.「채플린」의 영화『모먼·타임즈』에 등장하는 인간은 개인의 역할이 한없이 축소된 통절한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그처럼 인간 개개인은 하나의 비인격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직면한 현실도 그런것은 아닐까. 물질 만능의 풍조·소비성향의 팽창이 빚어낸 환락의 사회, 그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환멸감등. 그리고 이때의 좌절감들-.
우리는 범인을 쫓기전에 인간을 그렇게「스포일」하는 이 사회의 풍조에 경멸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범죄예방의 최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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