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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사 성적과 출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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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학창 시절의 성적과 장성한 후의『우수한 지도력』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을까-.『미국의 저명한 장군들에 관한 한 과히 관계가 없는 것 같다』고. 미국의 월간「퍼레이드」지는「아이젠하워」전 대통령을 비롯,「에이 브럼즈」현 주월 미군 사령관에 이르는 유명한 미군 장성에 대해「웨스트 포인트」사관학교 시절의 성적을 모조리 뽑아 소개하고 있다. 무엇인가 참고가 될 것 같다.
학창시절의 성적과 군인적 지도성 사이에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미국의「톱·클라스」장성의 대부분은「웨스트·포인트」시절, 학교성적은 중간정도였다.
사관학교 시절의 수재로서 뒷날 사령관으로 두각을 나다낸 사람은 근래 극히 드물다.「더글러스·맥아더」장군은 예외적인 수재로서 1903년「웨스트 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나머지는 거의가 중간 내지 중간 이하로서, 특히 눈에 띄는 예가 제2차 대전 중 분방한 맹장으로 명성을 떨친「조지·파튼」장군이다. 그는 1904년「웨스트 포인트」에 입학했으나 성적이 나빠 1년을 낙제, 1909년에야 겨우 1백 3명의 졸업생 중 48번으로 졸업했다.「아이젠하워」(원수),「브래들리」(전 합참의장),「웨스트 모얼 랜드」(전 주월 미군 사령관·현 육 참 총장), 그리고「에이 브럼즈」등 장성들도 재학 중에는 별로 두드러지지 못해「아이크」는 l915년에 졸업할 때 1백 64명중 44번, 동기의「브래들리」장군은 44번이었다.「맥아더」장군의 뒤를 이어 연합군 최고사령관을 지낸「리지웨어」장군은 1917년 1백 39명중 56번이라는 수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월남전에서 유명해진「웨스트 모얼랜드」장군은 1936년 2백 76명중 1백 12번, 동기생인「에이 브럼즈」장군은 뚝 떨어져 1백 85번 오히려 꼴찌에 가까운 축이었다.
「웨스트 포인트」사관학교는 전통적으로 공과기술학과에 크게 중점을 두고있었다. 그러나 공과 성적이 뛰어난 지도성을 나타낸다고는 말할 수 없다.
훗날에 군 지휘관으로 명성을 떨친 장군들은 모두 공과 과목에 약했고 따라서 성적도 눈부시지 못했다.
반대로 사관학교 시절「아이크」의 동기로 수석부터 5번까지를 차지했던「W·코렐」·「에드원·키블」·「조셉·아더」·「어니스트·밀러」그리고「존·브레그든」과 같은「톱」5명의 수재나「웨스트 모얼 랜드」장군과 동기인 「톱」 5명인 「올리버·헤이우드」「올리버·헤이우드」·「하버드·케디」·「찰즈·워더즈」·「랠프·킹」·「레이먼드·하비」등의 이름은 오늘날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맥아더」장군처럼 또 하나의 예외는 월남전에 앞장선「맥스웰·테일러」장군인데 그는1922년 4번의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서「웨스트 포인트」의 학업 성적이 뛰어난 지도력과 직결되고 있지 않은 것은 뚜렷하다.
이러한 이유로 학교 당국에서는 공과 편중을 반성하고 교과를 크게 고쳐 금년부터 처음으로 1백개 이상의 선택 과목을 두어 학생들이 학업에 넓은 유연성을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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