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EBS, 이젠 시청자를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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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가 올해 시청자에게 내건 첫 번째 약속이 사교육비 절감이고 두 번째가 공교육 정상화다. 국민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의 일환으로 '특별기획 교육을 고발한다'가 지난 주 5부작으로 방송됐다.

제1편 '불신 받는 공교육'에서부터 '사교육 전성시대''변하라 교사여''학벌주의가 문제다''학부모 이기주의'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의제들이었다.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흥분하고 있었다. 마치 부흥회 같았다. 그 소란스러움, 눈물까지 흘리며 야단치다가도 부흥회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범속하게(!) 살아 갈 것이라는 점, 게다가 부흥회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점까지 빼다 박았다.

TV를 잘 안 보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볼 시간이 없다'와 '볼 만한 게 없다'인데 후자 중에는 TV를 켜면 마치 도박판이나 싸움판에 온 느낌을 받는다고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다.

불쾌감.실망감을 넘어 적대감까지 보이는 그들에게 조금만 인내하면서 리모컨의 숫자를 살짝 돌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뜻밖에 좋은 것들을 정성스레 준비한 곳이 있다. 교육방송이다.

겉에서 봐서는 허름한데 들어가 보니 정갈하고 맛도 있고 친절한 음식점과 비슷하다. 메뉴도 다양하다. 일례를 들면 요즘 시리즈로 방송되는 '조지형의 미국사를 통해 본 대통령의 리더십'은 시의성을 잘 살린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다.

교육방송을 보면서 주류를 이루는 느낌은 '왜 저렇게 잘 만든 걸 그냥 볼 테면 보라지 하고 마는 걸까'하는 안타까움이다. 지나쳐서 문제인 것 중의 하나가 교육열인데 정작 교육방송은 지나치게 '의연하다'는 게 의문이다.

교육방송이 의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는 걸 시청자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EBS가 '좋은' 방송이라는 걸 부인하지 않으면서 실제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면 그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

교육방송의 정규프로 제목을 유심히 보면 제작진의 고민과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수학 탐험대''과학 놀이터''역사극장', 뭐 이런 식이다. 영어도 '서바이벌 잉글리시'다. 알약이 아니라 시럽으로 만들어 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제는 '잘 만들면 보겠지' 하며 기다리지만 말고 과감하게 소문을 낼 때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것도 문제지만 잘 차린 잔치가 소문이 안 나는 바람에 음식들이 버려진다면 그것도 문제다.

신문 등의 활자매체에도 부지런히 홍보하고 심지어 다른 지상파 방송사에까지도 과감하게 프로그램을 광고하기 바란다. 교육방송이 '뜨면' 혼탁한 TV의 '판'도 달라질 게 틀림없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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