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중심사회] 6. 지방과학을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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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0면

새 정부의 10대 국정 과제 중 하나가 국가 균형발전이다.이에 맞춰 과학기술계에서도 낙후된 지방의 과학기술을 하루 빨리 진흥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지방과학기술 육성에 관한 법안’을 마련 중이다.이에 본지는 최기련 고등기술원장과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를 초청,지방과학기술의 바람직한 육성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편집자)

▶최기련 원장=과학기술도 일부 지역 에 편중됐다는 것은 연구개발비 분포만 봐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도권과 대전이 전체 연구개발비의 75%를 쓴다.

▶임경순 교수=그간 지방의 과학기술은 지자체 선거나 있어야 선심 차원의 지원을 받았다. 정부 정책도 수도권에 갈 연구개발비를 조금 떼어 나눠준다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실력이 안돼도 배려해준다는 것인데, 이런 방향은 옳지 않다.

▶崔=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과학기술이다. 지방과학을 육성한다는 것도 결국 지역 경제를 혁신할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본다.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 연구소와 기업 등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클러스터'라고 한다.이런 혁신 클러스터를 곳곳에 만드는 것이 지방 과학기술 육성의 목표가 돼야 한다.

▶任=축구를 보자.월드컵 4강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국가대표팀 하나에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내려면 K-리그팀들이 경쟁을 벌이며 수준을 높여야 가능하다. 과학기술도 지역 클러스터들이 만들어져 수도권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국가 전체의 역량이 커진다.

▶崔=지방 클러스터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해당 지역 중심의 연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다. 즉, 각 지역별로 특화된 연구개발 목표와 과제를 정하고, 여기에 수도권이나 해외의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그게 지역 과학기술이 성장하는 지름길이다.처음에는 서울의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실과 지방을 오가며 연구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으로 내려가 뿌리를 박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任=그렇다.지역의 클러스터에 수도권 과학자를 유치하거나 참여시켜야 한다고 하면 지방 과학기술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겠지만, 그 지방에 있는 사람만 쓰면 망한다. 수도권 등에 우수한 과학자들이 더 많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崔=과학자의 네트워크는 기존의 시설과 인력 활용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레이저 연구를 할 때, 다른 지역에서 이미 레이저를 갖고 많은 업적을 올린 과학자를 참여시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에게 부분 연구과제를 맡기면 기기를 살 필요도, 인건비를 따로 쓸 필요도 없다. 이게 네트워크의 효율이다.

▶任=지방 과학기술이 진흥돼 수도권을 비롯해 여러 과학기술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생겨야 한다. 중심이 하나만 있는 네트워크, 즉 중앙집중식은 중앙에 이상이 생기면 전체가 무너진다. 얼마 전의 인터넷 대란이 이를 잘 보여줬다. 그러나 중심이 여럿 있으면 그중 하나에 타격이 가도 전체는 끄덕없다는 것을 현대 네트워크 이론은 말해준다.

▶崔=기술 지식정보의 유통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듯 지식 정보를 찾아서는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간 정부는 제품 생산기술을 개발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해왔다. 이제는 그런 분야 지원은 줄이고 인적.지식정보 네트워크를 세우는 데 힘써야 한다.

▶任=지방에서는 정부가 과학기술 클러스터를 만든다며 낙후한 기술을 지역의 중심 과제로 정하거나, 출연연구소의 분소를 내려보내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만들 수 있는,아주 새로운 기술의 중심지를 지방에 세워야 한다. 아무도 안해본 새 기술은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어디다 세워도 된다.또한 미래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엄청나다.

▶崔=행여 정부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제쳐놓고, 집짓고 기계 들여오는 것부터 할까봐 걱정들 한다.

▶任=연구소 기공식에 가서 삽자루를 잡아야 뭔가 했다고 하는 게 우리 정치인들의 생각인 것 같다. 이런 의식은 없어져야 한다.

▶崔=정부 출연연구소의 역할은 시장에서 실패 위험부담이 큰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당연히 신산업 창출을 목표로 하는 지역 과기 클러스터에는 이런 출연연이 있어야 한다. 현재 있는 정부 출연연구소를 지역별로 나눠 연구중심 대학에 운영을 맡기면 어떨까. 동시에 출연연구소 연구원들에게 지방대 교수 자격을 부여하면 사기가 올라가 이공계 기피도 줄어들으리라 본다. 지방대도 특화되는 효과가 있다.

▶任=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 체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전국 80곳에 퍼져 지방 과학기술의 중심지가 된다. 규모는 크지 않다. 1년 연구비가 수십억원 정도로, 우리나라에 20개쯤 있는 '프런티어 사업단'보다 적다. 이렇게 작은데도 네크워크를 잘 맺어 많은 성과를 올린다.

▶崔=지자체에 가면 산업자원부.환경부 등 부처마다 사람을 파견해 지자체가 하는 각 부처 관련 연구개발 사업들을 관리한다. 이렇게 따로따로여서는 제대로 된 지역 혁신 클러스터를 키울 수 없다.

▶任=지역의 클러스터는 지역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의 정무부지사를 '혁신부지사'로 바꾸고 그 사람이 중앙 정부에서 돈을 타내 클러스터를 알아서 만들게 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행정직이 그 자리를 맡아 일하기는 어려우므로 이공계의 고위 공직 진출도 늘 것이다.

정리=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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