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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후예 「모로」족|김찬삼 여행기.....<필리핀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별빛이 찬란히 비치는 화물선 갑판위의 하룻밤은 정서가 넘쳐 흐르는 서민적인 사교장이기도했다. 다음날 「민다나오」 섬 서안의 「코타바토」에 기항했는데 이곳에도 화교가 많아보였다. 「마닐라」가 그렇듯이 여기서도 이 화교들이 경제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섬의 가장 긴 「민다나오」강을 중심으로 한 「코타바트」 평야는 이나라의 옥토로서 과연 농업국다운 모습이 엿보였다. 이 지방은 「루손」섬 「비사얀」섬과는 달리 기업적인 대농원 경영이 일찍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농업정책으로서 온 힘을 기울이기 때문인지 농업이 매우 활발해 보였다.
배는 다시 서쪽으로 달려, 코끼리처럼 생긴 이 섬의 코끝에 해당하는 서쪽끝의 「잠보앙가」항에 이르렀다. 저 멀리 이 나라에선 보지 못했던 「이슬람」교 사원의 「미나렛」(첨탑)이 보이는가 하면 17세기에 만들었다는 「필라르」 요새도 보였다. 「이슬람」교와 「스페인」풍이 감도는 항구도시였다. 배가 어떤 마을 가까이 지나가니까 동네 남녀들이 작은 「반카」를 타고 다가오더니 갑판위의 손님들을 줄곧 쳐다보며 물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뭐라고 지껄였다. 갑판의 어떤 사람이 돈을 바닷물 속에 던지는 것을 보고서야 원주민들이 왜 모여드는지를 알았다. 저 「이디오피아」의 「마사와」항에서도 이런 풍습을 보았지만 이 「잠보앙가」에도 물속에 동전을 던지면 물속에 쏜살같이 들어가서 돈이 가라앉기 전에 용케도 건져내는『동전줍기』가 있는 모양이다.
나보고도 자꾸만 돈을 던져달라고 졸랐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재미로 물속에 던져서 애써 찾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반나체의 여성이 탄 「반카」위에 정성스럽게 던진다는 것이 그만 물속으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그 여성은 부리나케 물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어느새 돈을 붙들었는지 고맙다는 듯이 쌩긋 웃으며 그 동전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웃음에서는 「모나리자」의 신비의 미소 못지 않은 여성의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라 할 「애수의 미」를 엿볼 수 있었다. 미국담배, 「프랑스」 화장품, 「스위스」 시계, 일본의 장난감·나체의 「트럼프」 또는 「페르샤」 양탄자들 할 것 없이 「비닐」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와서는 사라고 조른다. 값이 꽤쌌다. 알고보니 이 물건들은 「말레이지아」며 「싱가포르」「홍콩」등지에서 밀수해 온 것이었다. 이 장사꾼들은 해양민족인「모로」 족인데 「민다나오」 「보르네오」 여러 바다에서 판을 치던 해적의 후예로서 지금도 해적의 솜씨로 밀수를 해 온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인디언」인 「아파치」족과도 같이 매우 호전적이어서 이들의 조상은 한때는「비사얀」 제도며 「루손」섬까지 건너가서 「그리스도」 교화한 「필리핀」마을을 약탈하고 포로를 끌고 와서는 노예로서 「보르네오」를 비롯한 「이슬람」교 나라들에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모로」족은 비기독교 「필리핀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얼굴모습, 풍습, 말들이 다를 뿐 아니라 「가톨릭」이 아닌 「이슬람」교를 믿는다.
이들은 「반항의 상징」인 듯 어떤 세력에도 굽히지 않으며 「필리핀」 독립 후에도 정부에 반발하고 반란을 일으킨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필리핀」 사람들은 「모로」족과 가까이 하려하지 않으며 특히 「비사얀」족에게 「모로」라는 말이 공포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도 「비사얀」 제도에 그 옛날 「모로」해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만든 망루가 지금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을 때에도 「모로」 족에 대해서만은 탄압하지 못하고 융화정책을 쓴 것을 보더라도 이들의 반항정신이 얼마나 강한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물론 「필리핀」의 한 주로 편입되어 있는데 형식상으로는 도지사, 시장, 동장이 다스리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모로」족이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반카」를 타고 「모로」는 간다』 『「모로」 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노래가 전해지는 만큼 강인한 민족성을 자랑하고있다.
그러데 내가 본 책에서는 「모로」족 이 미개하고 게으르다고 했는데, 정작 와보니 비록 문화수준은 일반 「필리핀」 사람보다는 낮지만 생활수준은 오히려 높은 듯 이들의 집은 「니파」 야자로 지붕을 한 보통 「필리핀」 시골집과는 달리 제법 함석지붕의 목조가옥들이었다.
「말라위」란 곳엔 「만다나오」 주립대학이 있는데 「모로」족의 대학이라고 하며 「이슬람」 문화를 이어나가는 모체가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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