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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대종상 50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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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갈수록 꼬이는 실을 보는 것 같다. 엉킨 실타래를 풀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쾌도난마(快刀亂麻)의 신공(神工)은 없는 것일까. 올해 50년을 맞은 대종상영화제 얘기다.

 알려진 대로 대종상은 한국 영화계 최고의 행사다. 1962년 시작돼 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시상식을 열지 못한 것을 빼고는 그 명맥을 이어왔다. 두 남녀가 성덕대왕신종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의 트로피는 감독·배우들이 한 번쯤 탐낼 만한 상징물이다. 게다가 올해는 대종상 50년. 지난 반세기 충무로의 성취를 집약한다는 의미가 크다.

 그 대종상이 요즘 시끄럽다. 특정 개인·단체의 이해가 엇갈리며 법정 다툼까지 벌어지는 모양새다. 11월 1일 KBS홀에서 예정된 올 시상식이 과연 제대로 치러질지 의문이 들 정도다.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권동선 전 대종상 조직위원장은 최근 “올 영화제와 부대행사의 개최를 금지해달라”며 사단법인 대종상영화제와 한국영화인총연합회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는 “2011년 영화인총연합회와 3년간 조직위원장을 맡기로 협약을 맺고 지난 2년 행사를 진행해 왔으나 연초 영화제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해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영화제 측과 영화인총연합회 측의 마찰도 간단치 않다. 시상식을 주관해 오던 연합회 측은 지난해 행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운영 주체를 대종상영화제 쪽으로 이관했다. 그런데 연합회 회원 일부가 그런 결정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내 올 초 승소했다. 이런 와중에 양측은 올 행사를 각자 따로 준비해왔다. 연합회 관계자는 “양측이 입장을 조율해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지만 영 미덥지 않다.

 영화제 주최를 둘러싼 정부 지원과 기업 협찬 등 이권 문제가 갈등의 뿌리다. 영화제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공명심 경쟁도 한몫하고 있다. 사실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 입장에선 이런 마찰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소수 영화인, 그를 둘러싼 주변 인사들의 다툼과 최근 급성장한 충무로 사이에 별다른 함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해마다 운영 방식과 수상 결과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대종상의 이력서를 돌아보면 “역시 그러면 그렇지”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하다.

 그럼에도 답답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국 영화 시장점유율(올 상반기 56%)을 자랑하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상 하나 없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화인과 관객이 함께 즐기는 할리우드 아카데미 시상식을 언제까지 부러워해야 하는 걸까. 관객을 주인공으로 모시는 대종상을 대망(待望)한다.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