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융긴축의 [딜레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금융긴축 정책이 작년 연말부터 강행됨에 따라서 업계의 자금난이 가중되어 사채이자 수준이 5%∼7%로 높아지고 있으며 금리부담의 가중과 자금난으로 도산 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금난이 심해짐에 따라서 전경련과 상의는 3일 남재무와 일련의 간담회를 마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려고 했다. 이 자리에서 남재무는 일반은행의 지준부족 문제가 정상화되고 물가 압력이 배제되어야만 긴축을 풀 수 있으며, 아마도 3월말까지는 현재의 긴축정책이 지속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남재무는 금융의 자율성을 요구하는 경제계에 대해서 그것은 비현실적인 것이며, 정부 주도하에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이상, 금융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재무는 취임 초부터 금융의 자율성보장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으며, 때문에 경제계를 비롯하여 금융계에서 크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나, 이제 종전의 소신을 번복하여 금융개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기에 이른 점은 매우 시사하는바 크다 할 것이다.
남재무가 금융에 개입해야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은 입각후의 실태파악에서 느낀 행정 [메커니즘]의 본질적 속성과 금융내막의 심각성에 연유하는 것으로 짐작되나, 얽혀 버린 현실에 남재무의 소신이 꺾인 것을 우리는 못내 아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지금의 물가정세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긴축정책이 불가피한 것이며, 금융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출중지가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정세가 그처럼 악화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리한 성장정책의 추진과 그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금융개입에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율 성장정책의 근본적인 조정을 시도하지 않고 있으며, 정책금융에 관한 한 금융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것이므로 그 주름살은 곧 유통자금의 긴축에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존시설의 활용을 억제하여 물자생산과 유통을 억제하는 대신, 신규시설을 확장한다는 본질적인 모순을 제기케 하여 안정을 목적으로 하나 사실은 안정을 파괴하는 역기능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합리적인 안정정책을 추구하려한다면 운전자금공급을 터놓는 대신 일절의 시설자금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옳은 것이며, 이점 오늘의 긴축정책은 방향착오를 일으키고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남재무는 일반은행 지준 부족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한 대출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 그러한 기준을 엄격히 지킨다면 연내에 금융긴축을 완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것이다. 우선 일반상업은행의 본질을 무시하고 일반은행으로 하여금 시설자금공급을 강요한 그 동안의 성장정책으로 말미암아 일반은행의 본질적인 자금회복 능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어 있다. 이런 실정에서 대출중지가 지속된다면 연체이율 년36.5%는 년60%의 사채 이율보다 월등 유리하므로 정상대출도 연체가 되지 않을 수 없어 자금회전율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 위에 대출중지는 신용창조 [메커니즘]의 중단을 뜻하므로 예금증가의 정체로 반영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금차관 등 방식으로 통화를 창조하지 않는 한, 예금증가에 의한 지준 정상화는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추가해서 차관 지보의 원리금상환을 위한 원화 수요가 연간 6백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월 평균 50억원의 예금이 감소해야만 지보 대불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긴축정책을 강행하는 한 추가대출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므로 상환능력 있는 기업조차 대불을 일으켜 사채 이율보다 유리한 연체 이자를 감수하려 할 것은 분명하다. 이미 l월중에 재벌급 회사의 대불현상이 수건 발생하고 있음도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문제를 이와 같은 각도에서 본다면 긴축정책은 스스로 한계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지준 부족을 정상화시키고 난 연후에 긴축정책을 풀겠다는 방침도 비현실적인 것이다. 요컨대, 물가문제를 금융긴축으로 해결하려 하면서도 고도 성장정책은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데 무리가 있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