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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표, 30만 달러 + 명품 시계 수수 모두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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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CJ그룹에서 수억원대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전군표(59) 전 국세청장에 대해 2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대진)는 이날 오전 CJ 측으로부터 미화 30만 달러(약 3억3000만원)와 고가의 명품 수입 시계 등을 건네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전 전 청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서 검찰은 1일 소환해 조사를 벌인 뒤 “사안이 중하다”며 2일 새벽 전 전 청장을 체포해 신병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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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에 따르면 전 전 청장은 국세청장에 취임한 2006년 7월 당시 국세청 납세지원국장이던 허병익(59) 전 국세청 차장이 신동기(57) CJ 부사장에게서 건네받은 30만 달러를 받은 혐의다. 전 전 청장은 그 후 이재현(53) CJ그룹 회장과 신 부사장, 허 전 차장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프랭크 뮬러’ 여성용 명품 시계 1점을 선물로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스위스의 시계 장인 이름을 딴 이 시계는 가격이 2000만원대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전 전 청장으로부터 해당 시계를 제출받아 압수했다.

 전 전 청장은 1일 검찰에 출석하기 직전에 변호인을 통해 제출한 자수서에서 30만 달러와 시계 수수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과정에서 돈의 성격에 대해 “국세청장 취임 직후라서 축하금으로 생각했고, 세무조사 무마와는 별개였다”고 대가성은 부인했다. 전 전 청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3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2007년 뇌물 혐의로 구속돼 징역 3년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0년 가석방됐던 전 전 청장은 3년 만에 다시 구속될 처지에 놓였다.

 검찰은 전 전 청장과 CJ 이 회장 등의 당시 호텔 회동에서 허병익 전 차장은 3000만원 안팎인 프랭크 뮬러 남성용 시계를 선물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허 전 차장에게 특가법상 뇌물죄를 적용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현행법상 수뢰액이 3000만원 이하면 형법상 뇌물, 이상이면 특가법상 뇌물죄가 적용되기 때문에 정확한 가격 산정에 나섰다.

 이와 함께 검찰은 2006년과 2008~2009년 당시 세무조사 무마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국세청 인사가 더 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국세청과 서울지방국세청의 실무라인에 있었던 또 다른 인사 수 명의 개입 의혹을 추가로 조사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실무자들 중 일부는 현재 고위 간부로 재직 중이다.

 ◆전군표·허병익·송광조, 모두 조사국장 출신=구속 수감된 전군표 전 청장과 허병익 전 차장, 최근 사퇴한 송광조(51) 전 서울청장은 모두 행정고시 출신으로 엘리트 세무공무원의 길을 걸어왔다. 전 전 청장이 행시 20회로 선배이고 허 전 차장이 22회, 송 전 서울청장이 27회다. 전 전 청장이 국세청장으로 있던 2006년 허 전 차장은 납세지원국장, 송 전 서울청장은 조사기획과장으로서 전 전 청장을 보좌했다.

 세 명은 모두 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냈다. 전 전 청장이 2004~2005년, 허 전 차장은 2006~2007년, 송 전 서울청장은 2009~2010년 조사국장이었다. 국세청 조사국은 전국 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총괄하는 핵심부서다. 비공식적으로 청와대 민정라인의 지시를 받아 ‘정권의 별동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국세청 조사국은 또 ‘국세청의 중수부’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직접 지휘한다. 서울청 조사4국은 대기업에 대한 기획·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국세청의 주포(主砲)다. 국세청 조사국이 ‘머리’라면 서울청 조사4국은 ‘손발’이다. 세무조사의 기획과 결과 판단은 국세청 조사국이, 실제 세무조사는 서울청 조사4국이 한다. 권한이 막강한 만큼 세무조사를 받는 대기업이나 개인들의 치열한 로비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로비로 인해 세무조사 결과가 왜곡되거나 은폐되기도 한다. 하지만 CJ그룹의 두 차례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 경우 처음엔 성공한 듯 보였으나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결국 5~7년여 만에 진상이 드러나게 됐다.

이가영·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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