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초기 대처 못해 재앙 더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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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구 지하철 사고는 초기 대처를 잘못해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을 또 한번 드러냈다.

특히 대도시 교통난의 유일한 탈출구로 삼아 확장을 계속해 오고 있는 지하철교통망과 관련, 안전체계를 근본적으로 점검해 봐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먼저 지하철공사 측의 안일한 대처가 문제점으로 꼽힌다. 화재 사실을 즉각 알리지 않아 반대편에서 중앙로역에 진입한 전동차 승객들이 애꿎게 희생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화범이 불을 낸 1079호 전동차(안심 방향)는 운행 시간표상 오전 9시52분40초에 중앙로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중앙로역으로 진입해온 1080호 전동차(대곡 방향)는 사령실로부터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한 채 이미 불이 붙어 있던 역 승강장에 진입했다.

1080호 전동차에 탔던 승객들은 "역에 진입했을 당시 곳곳에서 불꽃이 발견되는 등 화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며 늑장 대처를 질타했다. 이는 희생자들이 가족들과 나눈 휴대전화 통화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지하철공사 측은 1080호 전동차의 운행시간조차 밝히지 않으면서 "2개 전동차가 역내에서 거의 교행할 정도로 운행돼 반대방향 전동차의 운행을 막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만 설명했다.

그러나 지하철공사 측은 사고 2시간이 지난 낮 12시까지도 사고 상황을 설명하는 그림에 지하역 내에 한개 전동차만 있는 것처럼 그려 '공사 측이 반대방향 운행 전동차의 피해를 뒤늦게서야 알게 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았다.

현장 목격자들은 "1080호 전동차의 경우 출입문이 열리지 않아 희생이 더 컸다"고 증언해 비상시의 승객 대피체계도 갖추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구조에 나선 구조대원들도 "지하철 역의 도면조차 제공되지 않아 지하에 내려간 대원들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무방비 상태의 방호시스템도 피해를 키웠다. 화재에 대비한 스프링클러는 지하 2층의 역 구내에만 설치돼 있을 뿐 승강장에는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았다.

특히 지하 시설물임에도 화재시 매연을 강제로 뽑아내는 공조시설이 전혀 돼 있지 않아 사고 후 3~4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대구=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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