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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투쟁, 회군 더 어려워 … 리더십 상처날까 때 놓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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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한길 대표(왼쪽 사진)가 3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외투쟁을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대표의 회견 직후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 부대표가 민주당의 장외투쟁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 김 대표,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 윤 원내수석부대표. [김경빈 기자]

장외투쟁은 야당의 전매특허다. 여당을 향해 “우리는 나갈 테니 국회는 당신들 마음대로 해보라”고 을러대는 ‘벼랑 끝 전술’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회에선 의석수가 부족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야당이 재야 세력과 연대해 가두(街頭) 투쟁으로 활로를 모색하곤 했다. 양김(김영삼·김대중)이 주축이 된 야당이 ‘피플 파워’를 등에 엎고 직선제 개헌을 얻어낸 1987년 6월 항쟁은 장외투쟁의 정점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전된 이후에도 ‘거리의 정치’는 계속됐다. 여당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야당 지도자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극약 처방으로 계속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MB정부 이후 연례행사

 특히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은 연례행사처럼 장외투쟁을 벌여왔다. 2008년 쇠고기협상 장외투쟁, 2009년 미디어법 장외투쟁, 2010년 4대 강 예산 강행 처리 장외투쟁,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무효화 장외투쟁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새누리당도 야당 시절엔 심심찮게 거리로 나갔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검찰이 ‘세풍’ 수사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겨냥하자 한나라당은 그해 9월 32일간 장외투쟁에 돌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까지 매년 2~3차례씩 거리로 나갔다. 당시 당내 비주류였던 박근혜 부총재는 “등원해야 야당이 산다”며 이 총재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랬던 그도 야당 대표가 되자 2005년 말 사학법 개정안 강행 처리에 반발해 53일간 장외투쟁을 벌였다. 시청 앞 광장으로 달려나갈 때는 기세등등했지만 양김 시대 이후론 장외투쟁의 결과는 미미했다.

슬그머니 복귀한 2009년 “얻은 게 뭐냐”

 2009년 7월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하자 민주당은 당시 정세균 대표를 비롯해 천정배·최문순·장세환 의원 등이 의원직 사퇴서까지 제출하고 격렬히 장외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9월 정기국회 개회를 맞아 ‘조건 없는 국회 복귀’를 선언했다. 당 안팎에선 “얻은 게 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의원들도 이듬해 1월(정 대표는 6월) 슬며시 원내에 복귀했다.

 2011년 11월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됐을 때도 민주당은 “비준안 무효”를 외치면서 국회를 보이콧하고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2012년 예산안 처리를 명분 삼아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지난 4월 발간된 민주당 대선평가보고서는 당시 한·미 FTA 반대 투쟁에 대해 “지도부가 정당과 사회운동의 차이를 혼동했다”고 비판했다.

 2008년 쇠고기협상 장외투쟁 때는 다소의 성과를 거뒀다. ‘가축법 개정’이 그 열매였다. 그러나 당초 내걸었던 ‘쇠고기 재협상 관철’이란 투쟁 목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대표 시절의 사학법 개정안 반대 장외투쟁 때는 장기화되는 장외투쟁에 소장파들의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박 대표가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야 원내대표들이 극적으로 원내 정상화 협상을 타결지어 박근혜 대표를 곤경에서 구출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원내대표 라인이 현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었다.

2005년 박근혜 대표도 사학법 투쟁

 장외투쟁은 “나가는 것보다 들어오는 게 더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거리의 분위기에 휩쓸리면 강경투쟁 일변도가 될 수밖에 없다. 강경파를 만족시킬 카드를 얻어내지 못한 채로 국회로 돌아가면 지도부의 리더십만 타격받기 때문에 회군할 명분과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매번 진보단체들이 불 붙인 장외 집회에 이끌려간 형식이었다. 이런 구조는 민주당이 국회에 복귀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2009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이던 이강래 전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 모임인 ‘민본 21’에 나와 “그간 국회 문을 열지 않고 투쟁하다 보니까 나가기는 쉬운데 돌아오는 길은 험난해 이번 (미디어법 투쟁 때는) 병행투쟁을 선언하고 돌아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한길 대표도 이런 장외투쟁의 함정을 알기 때문에 일단 원내외 병행투쟁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당에 주는 압박감이 덜할 수밖에 없다.

글=김정하·김경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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