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치적 급급한 한국, 용인 경전철 7787억 부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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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개통한 용인경전철 객차가 이용객이 적어 썰렁한 모습이다. 용인경전철 이용객은 당초 예상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중앙포토]

경기도 용인시의 빚은 6253억원(올 6월 기준)으로 1년 전 3139억원에서 두 배가 됐다.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은 39%로 전국 244개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높다. 용인시의 재정건전성이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용인시 재정위기의 핵심 요인은 무리한 경전철 사업이다. 용인 경전철은 민간 사업자가 건설 비용을 부담하고 이후 경전철 요금 등을 통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BTO)으로 건설됐다. 1조32억원을 들여 2010년 7월 완공했다. 하지만 시는 부실시공 의혹을 제기하며 준공 승인을 거절했고, 운영사는 소송을 제기했다. 시가 2011년 10월 패소하면서 건설비 등으로 7787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이 금액만큼 시의 부채가 늘어났다. 용인시는 이 돈을 갚기 위해 지난해 4월 이후 지방채를 발행하고 있다. 승인액은 5153억원이다.

 시는 급기야 지난 6월 추경예산을 감액예산으로 편성했다. 본예산에 편성했던 주민자치센터 건립비 등 300억원 이상을 삭감했다. 용인시 오선희 예산팀장은 “9월 이후 편성 예정인 2차 추경 때도 감액 편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재정위기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상당수 지자체도 겪고 있다. 민선 단체장이 과시용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데다 국제행사 등에 과도한 예산을 쏟아 부은 게 제일 큰 이유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국 지자체 부채(지방채 기준) 규모는 27조1252억원이다. 하지만 공기업 부채 등을 합하면 100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 빚, 지방 공기업 합하면 10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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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대비 부채 비율이 25%를 넘는 지자체는 용인시(39%), 인천시(37.6%), 대구시(32%), 부산시(31%) 등 4곳이다. 안행부 홍순조 지방예산팀장은 “방만한 지자체 살림살이를 막기 위해 지방채 발행 상황 등을 수시로 점검하지만 공기업 등을 통해 편법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공식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원도 태백시의 경우 단체장의 공명심이 재정위기를 불러온 대표적인 사례다. 태백시 산하 태백관광개발공사가 2008년 함백산 기슭에 세운 오투리조트는 현재 부채가 3392억원이다. 태백시 올해 예산(2900억원)보다 많다.

 오투리조트는 이용객이 거의 없어 해마다 250억원의 적자가 나고 있다. 리조트 건립 당시 사업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전문기관의 의견이 제시됐지만 무시됐다. 잦은 설계변경으로 사업비가 당초 1713억원에서 44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인건비나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지 않고 허술하게 공사비를 책정한 탓이다. 태백상공회의소 함억철 사무국장은 “전문성이 결여되고 무리한 투자로 사태가 이 지경이 됐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인천시 산하 교통공사는 2009년 853억원을 들여 월미 은하레일을 건설했다. 인천역과 월미도 사이 8.3㎞를 잇는 관광용 모노레일이다. 하지만 안전진단 결과 부실시공 판정으로 아직 운행조차 못하고 있다. 시는 월미은하레일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로 했다. 당초 설계·시공된 방식의 모노레일로는 안전을 자신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고치는 데만 300억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세금낭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시민들은 "수백억원을 들여 건설한 철로가 결국 고철이 됐다”고 말했다.

 수익성 없는 국제스포츠행사도 지자체 재정운용에 발목을 잡고 있다. 전남도는 2005년 F1국제자동차경주대회 유치 당시 “7년 동안 1112억원의 이익을 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3년간 1731억원의 적자가 났다. 인천시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위한 경기장 건설 등을 위해 지난 4년간 지방채 8448억원을 발행했다.

국제행사에도 과도한 예산 쏟아부어

 영·유아 보육료 등 중앙정부의 광범위한 복지사업도 지방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2005년 12조9000여억원이던 전국 지자체 전체 복지예산은 지난해 30조9157억원으로 늘었다. 경기도는 복지비 부담 등을 이유로 올 하반기 감액 추경 편성을 추진 중이다. 자치단체들은 영·유아 보육료 국고보조율을 현재 50%에서 70%로 올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재정위기 속에서도 일부 지자체는 끊임없이 지방채 발행을 시도하고 있다. 인천시 산하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지난해 말부터 정부에 1500억원 규모의 지방채 발행을 요구하고 있다. 송도국제도시 개발사업비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지자체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빚부터 내려는 악습을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지자체 파산 제도가 없다. 대신 지방재정법에 따라 선심성 사업 등의 경우 투자심사를 통해 건전한 재정이 운용될 수 있게 유도한다. 또 ‘지방 재정위기 경보 시스템’을 통해 파산을 막는다. 이 때문에 미국식 지자체 파산제도처럼 지방재정 관리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의 경우 지자체가 채무 상환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파산신청을 할 수 있다. 디트로이트시를 포함해 1954년 이후 파산보호 신청을 한 미국 지방자치단체는 61곳에 이른다. 주정부가 방만한 경영을 한 자치단체를 직접 파산시키기도 한다.

미국 파산제처럼 관리 강화 시스템 필요

 한국과학기술대 김재훈(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의 지자체 파산제도는 기업 파산과 달리 지방재정의 자립성과 책임성을 확립하도록 하는 회생형 제도”라며 “지자체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지자체에 더 큰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찬호·윤호진 기자

지방 재정위기 경보 시스템 안전행정부가 지자체의 예산 대비 채무 비율 등 7가지 지표를 분기별로 모니터링해 지자체의 파산을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채무 비율이 25%를 넘으면 ‘주의’, 40%를 넘으면 ‘심각’으로 분류해 채무이행계획을 이행토록 한다. 지방교부세 축소 등의 방식으로 불이익을 주는 식이다. 하지만 재정위기 단체로 지정된 지자체는 아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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