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 스테이 … 넉넉한 인심이 밥 먹여 주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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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경남 함양 송전마을의 ‘대구댁 민박’에서 손님들이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 민박집 벽엔 ‘외갓집 같다’는 등 손님들이 쓴 글이 있다. [송봉근 기자]

전형적인 두메산골이었다. 읍내로 가는 버스는 하루 세 번밖에 오지 않았다. 30가구 50여 명의 주민은 산비탈에서 고추와 오미자를 기르고 산나물을 캐다 팔아 근근이 살아갔다. 동네에 자동차라곤 이장 댁 1t 트럭 하나뿐이었다. 7년 전 마을 모습이 이랬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지금 마을은 한 해 1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지난달 28일 하루에만 마을 주민의 다섯 배가 넘는 300여 명이 다녀갔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디딜방아를 밟아보며 연신 깔깔댔다. 어른들은 소나무숲 속 정자에서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인근 엄천강은 래프팅을 즐기는 이들로 넘쳤다. 방문객이 늘면서 마을 소득은 올랐다. 배기량 2.4L 대형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주민이 있을 정도다.

돈 없다면 밥·잠 공짜 … 입소문 타며 발길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전마을.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퇴색해 가는 산촌이었다. 빚 없는 집이 없었고 젊은이들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2004년. 당시 40대 초반으로 마을 이장을 맡았던 석연상(50)씨가 주민 회의를 열었다. 가난을 벗어나는 게 시급한 목표였다. 때마침 산림청 ‘산촌생태마을’로 지정되면서 14억원 사업비가 마을에 들어오게 됐다. 산골 소득을 높이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등을 건립해 일종의 ‘산촌 스테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업이다.

둘레길·래프팅·팽이만들기 등 즐길거리

디딜방아를 찧어보는 가족. [송봉근 기자]

 그런데 골칫거리가 생겼다. 숙박비를 얼마 받을 것인가였다. 평생 장삿속 챙겨본 적이 없는 이들이라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주민 김기완(70))씨는 당시 주민들 사이에 이런 말이 오갔다고 전했다.

 “외지에서 반가운 손님 오시는 건데 그냥 재워 드려야 하는 거 아닌교.”

 “근처 알아보니 대부분 하루에 3만원 받는다 아입니꺼.”

멀리서 보면 손아귀에 들어올 듯 작게만 보이는 마을 전경이다. 30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한 해 1만 명이 찾아와 `산촌 스테이`를 체험한다. [송봉근 기자]

 “그렇게 많이….”

 “그라모(그러면) 우리는 5, 6명이 와도 방 하나 쓰면 3만원만 받는 게 어떻능교. 형편 어렵다면 그냥 재워주고 합시데이. 고마 밥도 그냥 주고.”

 “그럽시데이.”

 수익은 주민 공동의 몫. 50여 명이 묵을 게스트하우스가 완공됐다. 지리산을 찾은 사람들이 가끔씩 들르기 시작했다. “그냥 재워줘야 하는 거 아니냐”던 순박한 인심이 어디 가랴. 주민들은 사정이 딱한 사람들을 무료로 재워주고 따뜻한 밥상을 내줬다.

 인심과 마을 정취가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외지인 발길은 더욱 잦아졌다. 기존 게스트하우스로는 감당 못할 정도가 됐다. 2011년에 2억원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50명이 묵을 수 있는 2층 펜션을 추가로 건립했다. 그래도 모자라 주민들이 민박까지 차렸다. 방문객들은 민박집 벽에 글귀를 남겼다. ‘외갓집 같네요’ ‘인심이 너무 좋아요’.

“외갓집 같아요” … 하루 300명 찾기도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좀 더 즐길거리를 만들었다. 연·팽이 만들기와 래프팅 같은 것들이다. 그러자 지난해 1만 명이 찾아와 1억5000만원을 썼다.

  신수철(67) 송전마을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마을 댕기간 사람들이 ‘인심 좋은 곳’이라고 할 때 제일 뿌듯하지. 아무도 모르던 산골을 지금처럼 만들어준 게 바로 시골 인심 아잉교. 욕심을 버려야 더 잘된다카이.”

함양=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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