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작·60년대|음악-(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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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0년대의 한국악단 활발했던 연주회와, 많은 창작활동, 많은 실내악및「오키스트러」 의 창단, 국악에대한 새로운 관심과 현대화등으로 70년대의 도약을위한 밑거름을 마련했다. 양악80주년을 맞아 열린제l회 「서울음악제」는 젊은 음악도들에게 많은 의욕과 자극을 준점에서 기록할만한것이었고 특히 젊은 연주가들에의한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은 60년대의 「피크」를 이루었다.
60년대초부터 시작된 신인음악「콩쿠르」는 많은 음악도들에게 격려와 자극을 주었고 또 많은 신인을 발굴했다.
고안익태씨가 주재하던 「서울국제음악제」와 「피아노」의 「아르투르·루빈스타인」 「루돌프·제르킨」,「바이얼린」의 「아이작·스턴」, 「오소노포소프」, 「테너」「스테파노」등과 「줄리어드」현악사중주, 「런던·필하머닉」등 세계 대가들의 연주를 들을수 있었던것이 60년대의 큰 수확이었다.
60년대 후반에서 강석희씨등에 의해 도입된 전위음악은 우리악단에 현대음악을 이해할수있는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기록할만한 것이었으나 반발도 적지않았다. 『음악은 아름다운 것이어야하며 화음이 아닌 불협화음, 악기를 두드리는 소리등은 음악이 아니고 잡음이다』고 평론가 이유선씨는 말하기도 했다.
흔히 연주는있어도 작곡은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가운데서도 60년대의 역작은 이상근 백병동 박준상 로널드서 강석희 이성천씨등의 작품을 들수 있으나 그중 하나도 집약된 작품을 찾을수 없다.
우리나라 작곡가 31명의 창작품 56곡이 연주된 제l회 「서울음악제」는 『겉보기에는 작품이 많이나왔지만 몇몇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외국작품의 모작혐의를 면치못할것』(나운영씨) 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국악계에서 아악과 민속음악등을 망라하여 5선보에 채록하게된것은 국악의 전승과 현대화에 획기적인 것이었고 이밖에 「김자경 오페라단」 등에의한 「오폐라·붐」은 흐뭇한 일이었다.
성악부문에서 이렇다할 인재를 내지못한 60년대 우리악단에서가장 큰 수확은 국내외에서 젊은 연주가들의 많은 활동이었다. 국내에서는 신수정·장혜원등이 무게있는 연주를 보여주었고 김영욱 정경화 정명화 한동일 이대욱 이희춘등은 세계에 한국음악을 인식케했다. 이들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활약은「바이얼린」의 김영욱이었다. 지난3월 「카네기홀」에서 그가 연주한「뵈탕」의「바이얼린」협주곡 제4번은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절찬을받은바있다.

<추전해준 분들="이유선" 이상만 김기정 나운영 전봉초 백악호 조상현 임원식 성경린 김자경제씨(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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