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살리는 퇴비 만드니 땅도 살고 회사도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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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충북 괴산의 농협흙사랑 퇴비공장에서 김창한 대표가 유기농 퇴비를 살펴보며 “요놈이 우리 회사 보물이고 효자여~”라고 말했다. [괴산=프리랜서 김성태]

‘농협흙사랑’은 농협 경제지주(금융을 제외한 경제 부문) 산하 13개 자회사 중 가장 덩치가 작다. 가장 큰 남해화학이 지난해 1조4688억원, 2위인 농협사료가 1조4354억원을 올릴 동안 농협흙사랑은 지난해 86억원의 매출을 냈다. 직원 수도 12명인 미니 회사다. 하지만 덩치 큰 회사들을 제치고 농협 자회사들 중 경영평가 1위를 차지했다.

 농부 출신인 김창한(55) 대표가 2009년 처음 부임했을 때 인삼조합과 농협이 지분을 투자해 만든 이 회사는 인삼용 퇴비가 잘 팔리지 않아 만년 적자 신세였다. 적자가 계속되자 농협은 한때 회사를 없애려는 구상도 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친환경 퇴비를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20여 년간 친환경 농사를 직접 지은 경험을 바탕으로 유기농 퇴비를 만들어 보자는 결심을 했다. 8년간 지역 조합장을 했고, 한국친환경농업협의회 회장을 1년간 맡은 이력도 있어 친환경 퇴비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농민들이 쓰기 편하고 당장 작물이 잘 자란다는 이유로 ‘유박(곡물 찌꺼기)’으로 만든 퇴비를 선호하는데, 이 유박이 땅을 딱딱하게 만들고, 산성화한다는 게 안타까웠다”고 그는 털어놨다. “흙의 힘을 살리는 천연 퇴비를 만들어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길이 농협 자회사가 할 일이라고 봤다”고 그는 설명했다.

 김 대표가 농사지을 당시 직접 유기농 퇴비를 만든 경험을 살려 땅에 좋은 유기농 원료 5가지를 배합했다. 유기농 계분(닭똥)과 버섯을 키우고 남은 배지, 왕겨를 찐 ‘팽연왕겨’ 등 좋은 재료만 고집했다. 한 가지 추가한 비밀 성분은 낙엽이 썩어 석탄화한 성분인 ‘이탄’이었다. 이것을 추가하자 발효가 잘 일어났다. 일반 퇴비보다 30% 이상 비싼 재료지만 성수기에 몰리는 주문을 비수기로 돌리고, 결제를 앞당기는 방법으로 원료 구매 단가도 15% 내렸다. 뿌리기 힘들고, 비가 오면 녹아내렸던 기존 퇴비를 개량해 과립형으로 뿌리기 쉽게 만든 것도 성공 포인트였다. 그간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한 해 7만5000㎞를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며 농민들에게 친환경 과립형 퇴비의 장점을 알렸다.

 반응은 놀라웠다. 2009년 말 39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86억원으로 100% 이상 늘었다. 올해엔 100억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농협흙사랑은 국내 최대 유기농 퇴비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무엇보다도 한 번 쓰던 퇴비를 좀처럼 안 바꾸는 보수적인 농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것이 흐뭇하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비수기 땐 하루 9000개, 성수기 땐 하루 1만1000개씩 20㎏짜리 ‘흙사랑(과립형 퇴비)’과 ‘삼마니(가축분 퇴비)’를 생산하는데 주문량을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김 대표는 “민간 기업처럼 회사 규모를 늘리기보다는 친환경 퇴비 만드는 법을 농민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 3만3000㎡(1만 평)의 공장 시설을 풀가동해도 정해진 생산량 이상을 만들어 내기는 힘든 상황이다. 농촌 곳곳에 이런 시설이 생겨야 물류비도 덜 든다. 농협 지역조합의 공동 퇴비장 70곳에 유기농 퇴비 생산 노하우를 컨설팅하는 일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괴산(충북)=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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