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농구, 16년 만에 아시아 탈출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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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벌 떼처럼 빠른 몸놀림. 백발백중 꽂히는 귀신 같은 외곽슛. 경기 내내 몰아붙이는 강철같은 체력…. 한국 농구는 ‘한때’ 아시아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중국의 만리장성만 넘으면 아시아 정상을 밟을 수 있고, 2위는 무난하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다 옛날 얘기다.

 유재학(50·모비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8월 1~1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출전을 위해 28일 출국했다.

 이번 대회 한국의 목표는 3위다. 내년 세계농구선수권 출전권이 걸린 커트라인이다. 한국은 1998년 이후 15년째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 못했다.

 한선교 프로농구연맹(KBL) 총재는 “내년 9월에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내년 8월 세계선수권에 출전해 정상급 선수들과 겨루면 기량이 눈에 띄게 성장한다.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세계선수권에 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반드시 3위 이내의 성과를 내야 한다”고 이번 대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시아 3위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목표다. 아시아 농구는 중국과 이란의 양강체제가 뚜렷하다. 또한 일본·필리핀·요르단·카타르·대만 등 3위를 놓고 싸워야 할 팀 중에서 만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다. 한두 경기를 삐끗하면 7~8위로 떨어질 수 있다.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따낼 가능성을 묻자 유 감독은 “반반”이라고 말했다.

 기대하는 건, 극심한 침체에 빠졌던 한국 농구가 서서히 중흥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드진에서는 양동근·김태술·김선형 등 재능 있는 선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유 감독은 “가드의 경쟁력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이 부분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장래가 촉망되는 대학생 유망주도 많다. 센터진에는 이종현·김종규가 버티고 있다. 유 감독은 윌리엄 존스컵을 마치고 문성곤과 최준용 등 헌신적으로 수비에 가담할 수 있는 대학 선수를 발탁했다. 유 감독은 “젊은 대학 선수들이 자신들보다 힘이 좋은 상대 센터를 얼마나 투지 있게 막아낼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승부처는 수비다. 유 감독은 “골밑에서는 어차피 승부가 안 난다. 우리 팀에는 좋은 가드가 많다. 가드가 상대 센터진을 밖으로 유인하고, 수비에서는 풀코트 프레싱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수비 전략은 ‘7-12-40’이라는 숫자로 요약된다. 유 감독은 “코트 전체를 활용하는 풀코트 프레싱은 7분 이상 하기 힘들다. 하지만 12명을 전부 활용해 40분 내내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중국·이란·말레이시아와 1라운드 같은 조에 편성됐다. 중국·이란이 버틴 지옥의 조다.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조 3위까지 2라운드에 진출하며, 중국·이란과는 4강전 이후에 다시 만날 전망이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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