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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통상임금 혼란, 노사정위 합의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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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주 한국GM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미지급 수당 청구소송에서 서울고법이 “상여금 성격인 ‘업적 연봉’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함에 따라 통상임금을 둘러싼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3월 대법원 소부(대법관 4명)가 내린 “정기적인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판결 이후 하급심에서 계속돼 온 통상임금의 범위와 관련된 엇갈린 판결이 재연됐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지난 5월 인천지법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하급심의 판결이 계속 엇갈리자 노동계와 재계 일각에선 차제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의 범위와 기준’에 대해 확실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통상임금 문제를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기보다는 노·사·정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로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애초에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송이 모호한 법 규정과 왜곡된 임금체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우선 통상임금의 정의가 모법(母法)인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지 않은 채 시행령에 애매하게 규정돼 있어 해석에 따라 판결이 엇갈릴 소지가 다분하다. 또 각종 상여금이 관행적으로 생산성과 무관한 경직적인 급여수단으로 고착되는 바람에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정하기 어렵게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전원합의체)이 일률적으로 통상임금의 기준과 방향을 획정하게 되면 그 경제적 파장을 돌이킬 수 없는 데다 오히려 새로운 노사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통상임금 논란의 원인이 법 규정의 미비와 임금체계의 왜곡에서 비롯됐다면 근본적인 해법 역시 법 규정 정비와 임금체계의 개편에서 찾는 것이 순리다. 문제는 통상임금에 관한 법 규정 정비와 임금체계 개편이 노사 어느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이루어져서는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노·사·정이 참여한 대화를 통해 법 규정을 명확히 정비하고,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노사 어느 한 쪽이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법 규정이 개정되거나, 임금체계를 억지로 뜯어고치려 하면 통상임금을 둘러싼 혼란이 가라앉기는커녕 또 다른 노사갈등의 불씨를 키울 우려가 있다.

 정부는 공익위원들로 구성된 임금제도개선위원회의 의견을 들은 뒤 개선책을 마련하겠다지만 정부 주도의 법 규정 개정은 실효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노사정위원회가 노사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침 노사 양측의 신망이 두터운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이 새 노사정위원장으로 취임해 어제 첫 본회의를 열었다. 우리는 새 노사정위원회가 통상임금 문제를 첫 번째 과제로 삼아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통상임금과 관련된 법규가 정비되고 임금체계가 개선된다면 사법부의 엇갈린 판결에 따른 혼란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