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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과잉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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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4년 때의 일이다. 주택자금으로 처음 집을 장만하기 위해 건축 허가를 받으로 나섰던 P씨(34)는 시세 완납증명서 한 장을 떼는데 꼬박 3일을 소비했다. 그가 3년 동안 전세 들어 살아온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성북구 삼양동, 종로구 명륜동 등 세 동네의 동사무소와 구청을 차례차례 돌아다니며 오물세·소방세 등 시세의 완납 증명을 맡다보니 3일이나 걸리고 만 것이다.
민원서류의 절차가 많이 간소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납세필증은 해외여행·입찰을 비롯해서 각종 인사허가 사무절차에 필수적인 구비서류로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젯점이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납세는 국민의 의무이고, 지금엔 누구나 스스로 납세할 만큼 계몽되어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시세의 경우 납세 제납자는 전체 납세자의 겨우7%에 불가피하다고 집계되었다. 7%의 미납자 때문에 그 많은 시민들이 시세증명을 떼느라고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런 번거로운 제도를 쉽게 없애지 않고 강행하는 위정자들의 공명심이야말로 바로 과잉된 행정권의 행사에 비롯된다. 할 수 있다.
낮1시에 시작될필 ○○날의 식전준비를 위해 상오 10시부터 일체의 통행을 제한하는 단속방법도 마찬가지로 과잉단속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지난5월8일 경남 진양군 일반성면 개암리 주민 최덕봉씨(48) 등 12가구 50여 주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하룻밤 새 집을 헐리고 이웃 창촌리에서 헛간이나 방1간씩을 빌어 임시 분산 수용됐다. 알고본 즉 도지사가 고위층의 부산·울산지구 시찰 때 『길가의 허술한 농가를 높은 분에게 보일 수 없다』고 동당 철거비 1천5백원씩만 주고 애교도 없이 모두 뜯어버렸던 것
또 울산 시내 부곡동 석유화학공업단지 입구도로 변에있는 최경식씨(33)의 초가1동도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 시청 「불도저」가 밀어버렸다. 이튿날엔 또 경찰이 연도경비를 한다고 부산∼울산간의 교통을 3시간 반이나 차단시켜 대 혼잡을 빚은 일은 모두 민주시민으로서는 삼가야 할 「과잉충성」에 속한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더니만 걸렸읍니다.』 날치기로 경찰에 잡혀온 S군(19)이 자기의 우둔함을 후회(?)했다. 지난 8월 만원「버스」안에서 30대의 한 신사가 호주머니에 5백원짜리 돈을 비죽이 꽂은 것을 「슬쩍」한 것이 그만 덜컥 잡혔다. 치기배 단속기간에 건수를 올리기 위한 형사의 함정인줄 미처 몰랐던 것.
××목별단속기간, ○○비상령 때마다 흔히 드러나는 「과잉단속」도 곧잘 비난을 샀다.
서울 서소문동 입구 KAL건물 입구에서 반도「호텔」까지의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길이다. 빤이 쳐다보이며서 멀다. 자동차 우선 주의에 밀려 보행자는 육교를 한번넘고 두 고비의 지하도를 뚫고 나가야 된다. 차의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 보행자가 감수해야할 불편 치곤 좀 심하다. 전시효과만을 노린 날치기 도시계획의 부산물이다.
『만원사례 좋아하시네 괜히 바가지만 썼다.』-지난9월20일 저녁 서울P극장문을 나선 L군이 같이 가던 「피앙세」에게 건넸다. 『금년들어 초거작, 인파쇄도』라 극장선전광고를 순진하게 믿고 매표창구는 아예 생각않고 점쟎게(?) 암표까지 사서 들어가 보니 이상하게 빈자리가 많더니 재미도 없더라는것.
논 1마지기를 짓는 농가 안방에도 「드링크」제 병이 굴려다닌다. 몸이 나른하고 아프면 보리쌀 한 되 값나가는 이 피로 회복제를, 마시고 들로 나간다. 약의 효험을 값으로 느낀다. 광고도 이 정도로 과장된 광고라면 일종의 기만이다.
이같은 「파잉벽」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겉치레나 일삼을 뿐. 불신을 불러일으키기 꼭 알맞다 이제는 신뢰와 이해 정직성으로 바탕된 새 사회 풍토의 조성이 아쉽기만 하다. <전영수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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