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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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의 축구는 69년에들어 해방이후 최대의「붐」을 이뤘다.국내로는 국민교 금융단축구「붐」을 일으켰고 국제대회인 태국왕배쟁탈대회서는 10년만에 처음으로 단득우승을 차지,「아시아」 의 왕좌에 「컴·백」 했다.
그뿐아니라 2천여만원의 축구협회기금을 마련했고 한국 「스포츠」 사상 3개월동안의 첫 「유럽」원정을 실현했던것도 올해였다.
금년도 축구의 희망적인첫고동은 금융단축구의 발족이었다. 선수가 모자라「스가우트」 과정에는 잡음이없지않았지만 7개은행「팀」으로 닺을올린 금융단「리그」는 6차 「리그」로「팀」당 36 「게임」, 모두 1백26 「게임」을 소화하여 일본「사커·리그」 의 「게임」수를 능가했다.
이에못지않게 「붐」을 일으킨것은 국민교 축구. 본사가 주최한 제1회 전국국민교대회에는 11개시·도의 12개 「팀」 이 참가, 아기자기하고 높은 수준의 경기를 보여 한국축구의 장래에 밝은 전망을 나타냈다. 또하나 어린이를위한 「일요축구학교」 의 영향도컸다.
이같은 연속적인 「붐」에「클라이맥스」를 이루기는 10월의 세계축구 15-1서울예선과 11월 「방콕」 에서열린 태국왕배 축구대회.
서울예선대회서는 비록 한국이 강호호주에져 탈락됐지만「멕시코·올림픽」의 은「메달」인 일본을 눌렀고 호주와도1무l패를 기록, 한국축구의저력을 과시했다.
태국왕배대회서는 「이스라엘」 「버마」등이참가하지 않았지만 「메르데카」배 대회의우승 「팀」인 「인도네시아」를 물리치고 우승했다.
그러나 숙제와 과오도없지 않았다. 청소년 축구와「메르데카」배대회의 예선탈락은 이유가 어떻든간에「붐」 조성과정에 있는 한국축구로서 과오라 아니할수 없다. 또한 집행부내의갈등 실업축구와 군축구의상대적인 위축, 하나뿐인「론·그라운드」로 인한 빽빽한 「스케즐」 등은 69년이 낳은 난제의 하나라하겠다. <윤경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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