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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청와대 진돗개 꼬리를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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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철호
논설위원

미국 대선후보들이 빠지지 않고 찍는 두 개의 사진이 있다. 하나는 엽총을 들고 사냥하는 사진이다. 미국에 널려 있는 총기가 2억7000만 정이다. 전미총기협회(NRA) 회원은 500만 명을 넘었다. 비극적인 총기 참사에도 불구하고 총기 소유 열풍은 한층 거세졌다. 외면하기 힘든 표밭이다. 또 하나는 개와 뛰노는 사진이다. 미국 가구의 40%가 개를 키운다. 개를 끌어안아야 “아, 저 후보는 온화하고, 믿을 수 있구나”는 이미지를 심는다. 개 알레르기가 있는 후보조차 항히스타민제를 맞아가면서 강아지와 뒹굴며 사진을 찍는다.

 최근 청와대 기사들 중 박근혜 대통령의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를 다룬게 유난히 눈에 띈다. ‘실세(實勢) 인증견’이란 것이다. 관저에 자주 드나드는 인사에겐 꼬리를 흔들고, 낯선 손님에겐 사납게 군다고 한다. 일부는 사석에서 “그놈들, 참 많이 컸더라”며 은근히 폼을 잡는 모양이다. 이후 청와대와 관가에는 이색 바람이 분다고 한다. 집에서 남 몰래 진돗개를 키운다. 관저에 갈 때 진돗개가 달려드는 민망한 장면을 피하려는 자구책이다. 진돗개는 진돗개 냄새가 풍겨나는 사람에겐 꼬리를 흔든다는, 민간 속설에 따른 삶의 지혜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결과는 신통치 않다고 한다. 암컷을 기르면 암컷인 새롬이가 여전히 왕왕거리고, 수컷을 키우면 희망이가 계속 사납게 짖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좁은 아파트에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기는 난감한 형편이다. 이 소식통은 “새롬이와 희망이가 모두 함께 싹싹하게 맞는 인물들은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관저를 자주 찾는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홍보수석,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장수 안보실장이라고 귀띔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에 대해 물어보니, “글쎄,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낀다. 박 대통령의 대북 노선이 왜 원칙적으로 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지난 12일 원부자재를 반출하려 개성공단에 간 기업인들은 참 안쓰러웠다고 했다. 반출을 도와주러 나온 근로자들의 초라한 행색부터 짠했다. 석 달간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통근버스에 기름 공급이 중단되면서 땡볕에 한 시간 넘게 걸어서 오간 탓이다. 옷차림도 남루해졌다. 개성공단에는 남쪽에서 가져간 세탁기가 많다. 북한 근로자들은 작업복은 물론 집안 빨랫감까지 가져와 세탁하곤 했다. 그런 세탁기가 멈춰선 것이다. A기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없어도 그들 표정에서 얼마나 간절히 재가동을 원하는지 묻어났다. 이틀간의 반출 일당이라도 줬어야 하는데….”

 사실 개성공단의 경제적 의미는 거의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경제규모는 33조5000억원으로 남한의 38분의 1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지난 석 달간 휴대폰 매출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다 원자재를 반출하면서 개성공단 기업들은 급한 불은 껐다. 상당수는 공단이 재가동돼도 더 이상의 기대는 접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개성공단 중대 결심”의 카드까지 자신 있게 꺼내 드는 배경이다.

 특사로 파견된 최용해 북한 총정치국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조선은 정말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생을 개선하고 싶다.” 그런 마음의 1%라도 남한을 향한다면 남북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청와대는 개성공단의 ‘국제화’ ‘발전적 정상화’를 고수 중이다. 이는 한 번이라도 북한이 고개를 숙여 달라는 표현이나 다름없다.

 연평도 포격 이후 우리 사회의 대북 정서는 아주 나빠졌다. 야당의 ‘안보장사’라는 비난은 먹히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원칙적 대북 정책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북한이 보다 과감하게 변했으면 싶다. 요즘 통일부 직원들은 류 장관이 청와대로 향하면 “묵언수행(默言修行) 가신다”며 안타까워한다. 외톨이 신세다. 남북관계가 어쩌면 청와대 진돗개의 꼬리에 달렸는지 모른다. 새롬이와 희망이가 류 장관에게도 꼬리를 흔들어야 북한의 숨통이 트인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