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영광의 내조자는 한국의 여성-불 르노도 문학상탄「라캉」씨와 부인 현병유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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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파리=장덕상 특파원】17일「프랑스」2대 문학상의 하나인「르노도」수상자「막스·올리비에·라캉」씨 댁을 기자는 찾았다.「파리」교외의「벨르뷔」에 자리잡은「라캉」씨의「아파트」문을「노크」하자 그의 한국인부인 현병유여사(현정주의원 딸)가 반겨맞아준다.
『축하합니다』란 기자의 첫말에 부인 현여사와「라캉」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라캉」씨는「파리」법대 및 정치대학을 졸업한 뒤 곧「아바스」통신사에 입사 AFP를 거쳐 지금은「피가로」지의 특집담당기자로 있는데 그는 32년동안 언론계에 바친 노련한 기자로 손꼽히고 있다.
「라캉」씨는 AFP특파원으로「아프리카」인도「파키스탄」「실론」「버마」「인도차이나」및 한국서 예리한 필봉을 휘둘러 큼직한 언론상도 둘이나 받았고『인도기』『두개의「아시아」』등 기사도 여러편 냈으나 소설을 쓰긴 이번이 처음인데 첫소설『분노의 불길』이「프랑스」최대의 상을 받게됐다.
왜「카미사르」(18세기초 구교도에 대해 반항을 일으킨「세반」지방의 신교도)의 반항을 소설의 주제로 잡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라캉」씨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세반」지방이 바로 선친의 고향이며 토지가 있는 곳이었죠. 고향에 여러 차례 내려가 순례하며 「카미사르」반항에 대한 책과 자료들을 취미로 수집했읍니다.
다음엔 또 어떤 소설을 쓸것인가?』이 물음엔 옆에 앉았던 현여사가『역사소설이 아닌 다른것일거예요』라고 부군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한국전쟁때 종군기자로 특파돼 도착한 것은 1951년 7월 개성서 첫휴전회담이 열리기 전날이었다.「라캉」씨는 한국동란이 인연이 되어 한국부인과 결혼하고 현재 두 딸을 슬하에 두고 있다.
이대영문과출신인 현병유여사는 53년 도불,「라캉」씨와 결혼하여「프랑스」지식인층에 한국여성의「이미지」를 좋게 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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