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영균씨<이대 교수·영문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나영균씨의 겨울에는 방학이 있다. 직장인 이대를 쉬고 집에 들어앉아있고싶은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계절이 겨울이다. 「40년을 돌아 다녔더니 돌아다니는 일에 싫증이 났어요. 이 겨울엔 집에만 있으려고해요.』
다홍치마에 연두색 반회장 저고리를 입고 버선을 신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식으로 꾸민 서재에서 보낸다. 하는 일은 독서, 직업적인 독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한 독서. 그리고 역시 자기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붓글씨.
친정어머니 배숙향 여사(68)에 시작한 붓글씨에 마음이 끌려 나영균씨가 붓에 손을 댄 것이 2년전. 정식으로 배운 것은 동방연서회에서의 한달뿐이다. 왕희지 글씨본을 내놓고 혼자서 한시간 두시간씩 꼬박 연습하는게 고작이다. 「어떤 예술과 마찬가지로 붓글씨는 참 아름다워요. 늙을 때까지라도 붓글씨 취미는 계속하게 될것 같아요.』
좋은 먹은 벼루위에서 향긋한 냄새를 풍긴다.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 한자한자 글씨본을 베껴가다보면 왕희지란 사람에 압도당한다. 이만큼 쓸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라고 절감한다.
『글씨에 통하려면 연습종이가 한간방 천장을 꽉메워야 한대요. 그만큼 쓸 생각이에요.』그리고 또하나 자기자신을 위한 독서 「플랜」은 「제임즈·조이스」의 재정리.
겨울이라 더 길게 보이는 손, 더 차가운 눈, 더 높은 음성속에서 「에고이스틱」한 자기추구의 즐거움이 섬광처럼 빛나고 있다. 차단된 밖의 세계에서 눈이 내리거나 찬바람이 불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겨울은 다만 자기를 추구하는 공간을 한층 밀폐시켜주는데 효과적이라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