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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종·온난화 … 곤충 생태계 대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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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기도 연천군에서 1만3200㎡(4000평) 인삼 농사를 짓는 조만석(62)씨. 지난 20일 인삼밭에서 나방 같은 게 날아다니는 것을 처음 목격했다. 이내 인삼 줄기와 잎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삼 뿌리까지 말랐다. 증상은 밭 곳곳으로 번졌다. 조씨에 따르면 “해충이 없어 4년 동안 약 한 번 쓰지 않은 밭”인데도 그랬다. 원인은 미국선녀벌레. 조씨가 본 나방 같은 곤충이다. 북미에 살던 이 곤충은 2009년 서울 우면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주로 과일과 채소 수액을 빨아먹어서는 말려 죽였다. 그러더니 이젠 인삼밭에까지 퍼진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있는 김영숙(57·여)씨의 텃밭은 최근 메뚜기 비슷한 곤충의 습격을 받았다. 처음엔 2.5~5㎝ 정도 벌레 몇 마리가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며칠 새 확 불어난 벌레는 깻잎·파는 물론 고추 열매까지 싹 갉아먹었다. 그 바람에 396㎡(약 120평) 김씨의 텃밭은 잡풀 한 포기 없는 맨땅이 됐다. 벌레의 정체는 토종 갈색여치였다. 2006년만 해도 충청도 남쪽에만 출몰해 과일을 먹어 치우더니 어느새 경기도 중북부까지 올라왔다.

 한반도 곤충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 새로운 외래종이 극성을 부리는가 하면 온난화로 말미암아 남부지방에서 살던 곤충들이 점점 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

 외래종은 묘목과 수입 목재 등에 묻어 속속 국내에 유입되고 있다. 2010년 경기도 남부와 충북 청원군 등 중부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블루베리혹파리가 대표적인 예다. 북미가 원산지인 이 곤충은 직경 1㎜ 정도의 알이 블루베리 묘목에 붙어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블루베리 잎과 꽃을 먹어 농사를 망친다. 인도 등지의 갈색날개매미충은 2010년 충남·전북 일부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지 3년 만에 전국으로 퍼졌다. 사과·배·복숭아에 피해를 준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 곤충으로 인한 피해 면적이 2억5100㎡(약 7600만 평)에 이른다.

 온난화는 아열대 외래종이 쉽사리 국내에 정착하도록 하고, 또 갈색여치 같은 남부지역 토종 해충이 서식처를 넓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충은 아니지만 1990년대만 해도 제주도에서나 발견되던 왕나비는 이젠 강원도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기후변화로 인해 모습을 감추는 곤충도 나오고 있다. 추운 곳에 사는 북방계 곤충이 주로 그렇다. 천연기념물 제218호인 장수하늘소는 2006년 경기도 포천시 국립수목원에서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아예 종적이 끊겼다. 서식처가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농민들은 새로운 외래 해충으로 인해 한숨을 짓고 있다. 천적은 물론 적절한 방제약도 없어서다. 경기도농업기술원 이영수 연구사는 “외국에서 듣는 방제약도 우리 토양에 뿌리면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외래종에 대해 환경 시험까지 마친 방제약이 나오려면 3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외래종이 새로 발견된 뒤 3년간은 속수무책이란 얘기다.

 생태계 교란 또한 문제다. 베트남·인도 등지에 살던 등검은말벌이 2000년대 초반 한국에 들어오면서 먹이인 꿀벌 개체수가 급감했다. 영남대 최문보(생명과학과) 교수는 “꿀벌이 줄면서 산간 식물의 꽃가루받이가 덜 이뤄지는 등 외래종 때문에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다른 식으로 적응하는 곤충도 있다. 바로 개미다. 북쪽으로 가기보다 산으로 올라간다. 조금만 높이 가도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저지대에 주로 살던 검정왕개미(일본왕개미)가 최근 산에서 발견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검정왕개미는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흔히 보이는 개미다.

 한라산에 사는 일본장다리개미는 최근 3년 새 500m 위로 올라갔다. 국립산림과학원 권태성 박사가 2009년과 2012년 한라산 개미 생태를 조사해 비교한 결과다. 2009년 1300m까지만 보이던 일본장다리개미가 지난해엔 1800m에서도 발견됐다. 권 박사는 “개미가 온난화를 피해 위로 올라간 극명한 사례”라고 말했다.

최모란·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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