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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리조실록』 손자는 『황진이』 … 북한서도 인정받은 홍명희 3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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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홍기문(左), 홍석중(右)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1888~1968) 집안은 북한 문화계의 명문가로 유명하다. 벽초의 뒤를 이어 역사학자인 아들 홍기문(1903~92)과 인기 작가인 손자 홍석중(72)이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풍산 홍씨로 노론에 속했던 홍명희 집안은 남한에서도 구한말 명문가였다. 사도세자의 장인으로 영의정에 올랐던 홍봉한(1713~78) 등이 그의 조상이다. 홍명희의 부친인 홍범식(1871~1910)은 경술국치 당시 자결한 인물로 유명하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가 훈장을 추서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홍명희는 ‘소년’지에서 함께 활동한 이광수·최남선과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며 신문학을 열었다. 그의 소설 『임꺽정』은 한국문학에 대하 장편소설의 계보를 연 작품이다. 1985년 남한에서 첫 출간 이래 지금까지 130만 부 가까이 팔렸으며, 황석영의 『장길산』이나 김주영의 『객주』 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홍명희는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한 뒤 북한에 남게 되고 장남 홍기문 등 일가족은 그를 따라 북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가 월북한 데는 김일성 주석의 환대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김일성 주석은 북에 혼자 머무르던 홍명희의 환갑상을 차려주는가 하면 평양에 도착한 홍명희 일가에 자기가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내줬다는 일화도 전한다. 이후 홍명희는 부수상(1948)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초대위원장(1961) 등을 역임했지만 사실상 명예직에 가까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명희가 16세에 본 장남 홍기문은 형제와 같은 부자지간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월북하기 전에는 언어 연구에 몰두해 『정음발달사』 『조선문법 연구』 『향가해석』 『리두연구』 등 국어학사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월북 뒤에는 사회과학원 부원장을 맡아 『리조실록』의 번역작업을 지휘했다. 『박지원작품선집』 국역 작업도 홍기문의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은 대하소설 『높새바람』(1993)과 『황진이』 등으로 북한 최고의 인기 작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69년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뒤 70년 단편 ‘붉은 꽃송이’를 발표했다. 황진이를 소설로 형상화한 소설 『황진이』는 영화배우 송혜교가 주연을 맡은 영화 ‘황진이’(2007)의 원작으로 화제가 됐다.

 특히 이 작품은 ‘탁월한 역사적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소설적 서사와 야사, 속담과 살아있는 비유를 풍성하게 구사했다’는 평을 얻으며 2004년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남한에서 제정한 문학상이 북한 작가를 수상자로 뽑은 첫 사례였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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