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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를 '굿잡'으로 만들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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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채필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국의 고용률은 64.2%로 경제력이 비슷한 나라들보다 훨씬 낮다. 이에 현 정부는 2017년까지 93만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은 것 같다.

 정부가 국민의 삶이 좋아지게 하려고 입안한 정책인데 사람들은 왜 피부에 와 닿는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필자는 문제 요인을 에둘러 피하지 말고 솔직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정공법으로 풀어나가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본다.

 실상을 보자. 지금 한국의 시간제 근로자는 고용기간 1년 미만이 90%이고 10인 미만 영세기업에서 65% 넘게 일하고 있으며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질 낮은 일자리라는 의미다. 시간제 일자리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이로 인해 노동계에서는 전일제는 선, 시간제는 악이라는 대칭적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낙인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신바람 민족인 한국 사람에게는 일할 의욕을 상실케 해 시간제 일자리가 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이 배가되고 있다.

 그래서 시간제 일자리가 선의 개념으로 변화되려면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과로 공화국인 한국 사람들은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몸이 아프게 되면 응급실로 가야 한다. 또한 평소에도 많은 환자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인술을 베푸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퇴근도 하지 말고 주말도 없이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은 직업인 개인의 권리 차원에서도 무리한 요구다. 하지만 환자와 의료진을 함께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병원이 갖추고 있는 훌륭한 의료시설과 장비를 밤이나 주말에도 가동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언제든 안심하고 제공하고 받을 수 있도록 그 시간대의 근무조를 더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근무 형태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의료진을 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를 조정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전국의 모든 병원에 획일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희망하는 곳부터 먼저 적용하고 점차 확대해 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는 노동위원회의 고위직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노동위원회에 제기되는 사건이 계속 늘어나 처리 기간도 장기화되고 직원들은 일에 치여 심판이나 조정도 사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통상적으로 구제신청 사건이 제기되면 사실 조사와 심문회의 등을 여러 차례 거치게 된다. 단계별 절차가 매일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서 진행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요일별 격일 근무조(월수금/화목) 형태로 일하는 ‘시간제 고위 공무원’ 상임위원 제도를 운영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전국에 11개에 불과한 지방노동위원회를 늘리지 않고도 원거리 지역에는 요일을 정해 순회 출장 심판조정 서비스를 제공, 취약계층에 대한 권리구제를 한층 강화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첫째,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차별이 없게 해야 한다(형평의 원칙). 둘째,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해 시간에 비례한 동일한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비례의 원칙). 셋째, 100세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생애 주기에 따라 개인별로 다양한 근로 형태의 선택이 사회적으로 존중되는 노동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다양성의 원칙). 이런 원칙에 따라 위의 예들과 비슷한 다양한 종류의 질 높은 시간제 일자리를 개발하면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일자리의 블루 오션이란 개념으로 전환돼 국민의 신뢰 속에 순조롭게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채필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