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란트의 신 현실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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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빌리·브란트 서독수상은 28일 취임 1주일만에 서방동맹국들과의 협조기조를 유지하면서 공산동구권 국가들과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적극 외교정책을 구체적으로 개진했다.
브란트 수상이 영도하는 사민당·자민당의 연립정부는 9월28일의 총선 전후에 천명한 양당의 정책성명으로 미루어 현상유지에서 현실에 입각한 대외관계의 혁신을 도모할 것으로는 이미 예측돼 오던 터이다. 그렇지만 한국이나 월남과 같이 분단된 국가로서 종전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난 대 공산권 외교를 피려 한다는 앎에서 우리의 지대한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다.
브란트 수상이 28일의 정책연설에서 천명한 골자는 ①독일연방정부(서독)가 전 독일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종전주장을 피하고 국제법상의 외국승인은 아니지만 단일 독일국 내의 2개 국가의 실존을 인정하고 정부급의 공식협조를 추구할 용의가 있다 ②오데르·나이세 경계선 문제를 포함하여 공산 폴란드와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열 용의가 있다 ③이미 4년전에 제의된 바 있는 서독·소련간의 무력사용포기협정을 맺자는 것 등이다.
이러한 외교노선이 동·서독을 중심으로한 동서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나치 독일의 침략전쟁이 가져온 후유증을 다소나마 씻어주고 분단된 독일국민들에게 타율적으로 가해져온 고통을 조금이라도 누그리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또 브란트 수상이 밝힌 핵무기 확산금지조약의 조인과 함께 군국주의·복수주의 서독의 침략성이라는 공산권의 상투적인 대서독 선전을 배제하는데도 일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브란트 수상의 대동구 관계개선 안은 모두가 현상을 영속화하고 따라서 동서의 대립 속에서보다는 차라리 전면적인 협조 속에서 통독을 이룩하려는 기본목표의 달성을 더욱 요원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공산 동독은 국력이 우세한 서독의 영향력 침투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고 소련은 서독이 대표하는 자유세계의 바람이 동구권내의 제국에 불어드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은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에 사민당·자민당의 새로운 대동구 관계 개선책이 실리를 거두리라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구주 내의 긴장 해소와 평화는 원하지만 이의 대가는 동서독의 영구분할이라는데 집약되고 있는 소련의 기본입장에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드골의 퇴진과 퐁피두·불 대통령의 취임 및 서독의 정권교체로 불투명에 싸여 있던 영·불·서독관계에 전기가 마련된 느낌이 짙다. 서구의 새 정부는 우선 취임 직후, 1년여나 끌어온 마르크화와 평가절상문제를 매듭지어 미·영·불·화 등 주요 통상 파트너들의 고질적인 대제통화체제에서 투기적인 불안을 배제하는 단을 내렸다.
새 연립정부는 또 구주 공동시장의 강화와 확장 안의 일환으로 영국의 초기 구공시 가입을 촉구하여 같은 정치노선에 서있는 윌슨 영 정부에 접근책을 쓰고 있고 구주의 세력권분해현상을 해소시키려는 퐁피두 불 대통령 정부와도 새로운 이해의 일치점을 발견하고 있다.
의회내 의석 수의 근소한 과반수와 주니어·파트너인 자민당의 과거 내력으로 보아, 브란트 수상정부가 안고 있는 취약성이 안정의 기초를 찾으면서 독일 국민의 이익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진이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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