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외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유엔」총회 정치위원회는 28일 한국문제를 상정했다. 이 자리는 단독 초청이냐, 동시 초청이냐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공산측의 무조건 동시 초청안은 좌절될 것으로 낙관된다.
한 가지 관심을 모으는 일이 있다. 표를 셈하는 「스코어」얘기가 아니다. 한국 단독초청안의 지지를 호소할 연사가 바로 일본대표라는 사퇴.
일본은 우리나라와 정식의 외교「채늘」을 열어 놓고 있다. 대사급을 교환하고 있는 친절한(?) 이웃이다. 그러나 뒷문으로는 북괴와의 왕래도 찾게 하고 있다. 상업거래는 물론이고, 지난 64년 동경「올림픽」때는 북괴선수들이 대거 일본에 입국도 허용되었다. 그 뿐인가. 지난 67년말까지 인도주의라는 명분으로 북송된 재일교포는 8만8천6백여 명에 이른다. 69연간 일본 조일 연감에 따르면 북괴와의 통상은 제법 활발하다. 수출액이 6백37만「달러」, 수입은 무려 2천9백60만6천「달러」.
일본의 외교 「패턴」은 어디까지나 「실속 제일주의」이다. 국제사회에선 정식 국교수립국인 한국을 두둔하지만. 국내에선 「야누스」적인 「제3의 얼굴」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3의 얼굴」이란 북괴와 일본과는 아무런 국교관계가 없기 때문에 하는 얘기이다.
굳이 일본의 외교적인 얼굴 생김까지 탓할 것은 없다. 더구나 국제외교무대에서 보여주는 따뜻한 우정엔 더 말할 나위 없다.
문제는 우리의 외교도 「실속」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그와 같은 외교「패턴」은 현대사회의 다원적인 면모를 새삼 두드러지게 한다. 최근의 「오끼나와」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본 당국은 「스튜던트·파워」의 역력을 국제외교무대에선 미묘하게 각색, 오히려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오늘의 세계에선 그처럼 한 가지 안의 윤리는 차라리 「터부」인 것 같다. 그것이 외교의 「델리키트」한 미로를 헤엄쳐 나가는 기교가 아닐까. 외교의 술에서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는 것이 현대의 정치인 것이다. 실로 다원시대의 다원외교를 실감하게 한다.
일본대표의 연설도 역시 다원적인 교훈을 준다고나 할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