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기념비' 까다로운 행정절차 … 로더미어 자작부인이 앞장서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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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수도 런던에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가 세워진다. 한국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올해 11월 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착공식의 첫 삽을 뜬다.

 6·25 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파병한 영국 수도에는 아직 참전 기념비가 없다. 기념비 설치와 관련한 영국의 행정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 난관을 영국의 유일한 한국인 귀족 로더미어(64·한국명 이정선·사진) 자작부인이 해결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설계도에 따르면 기념비는 5.8m 높이의 사다리꼴 형태의 탑으로 3개 면에 태극기와 영국의 유니언기, 유엔기가 새겨지고 나머지 한 면에는 고개를 숙여 전우의 희생을 추모하는 영국 군인의 형상이 만들어진다. 제작은 영국의 유명 조각가 필립 잭슨이 맡았다.

 참전 기념비는 런던의 한복판에 들어선다. 템스강을 사이에 두고 대관람차 ‘런던아이’를 마주 보고 있는 영국 국방부 뒷마당이다. 이곳에는 19세기 영국의 식민지 개척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찰스 고든 장군 동상 등 영국군의 상징물들이 세워져 있다. 기념비 위치로는 최고의 ‘명당’인 셈이다.

 영국은 5만6000여 명을 파병했고 그중 1000명 이상이 전사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참전 기념비가 없어 해마다 6월 25일에는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지하에서 옹색하게 전몰장병 추모 행사가 열려 왔다. 성당 지하 벽면에는 1999년에 영국의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BKVA)가 만든 폭 2m의 전몰용사 위령패가 붙어 있다.

 주영 한국대사관은 그동안 여러 차례 런던에 기념비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런던 중심부의 땅을 얻기가 어려웠다. 영국에선 기념비를 만들려면 우선 문화·환경·국방 등 관련 정부 부처의 동의를 얻은 뒤에 해당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무엇보다 로더미어 부인이 설립 추진 비용으로 55만 파운드(약 9500만원)를 기부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주영 한국대사관의 박주현(해군 대령) 국방무관은 “지난해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찾아가 도움을 호소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해 깜짝 놀랐다. 기부뿐 아니라 인허가 과정과 기념비 제작자 선정 등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로더미어 부인은 “내 조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일에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뉴욕·오타와=정경민 특파원, 워싱턴· 내슈빌=박승희 특파원, 런던·버튼온트렌트=이상언 특파원, 파리=이훈범 기자, 아디스아바바·메켈레·앙카라=정재홍 기자, 마닐라·방콕·촌부리=강혜란 기자, 보고타·카르타헤나·키브도=전영선 기자, 캔버라·골드코스트=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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