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한국, 중재 잘 몰라 외국서 패소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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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재는 ‘비즈니스 한국’을 알리는 데도 크게 한몫할 것이다. 한국을 국제 중재의 허브로 키우는 데 일조하고 싶다.”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국제중재팀을 이끌고 있는 윤병철(51·사진) 변호사는 이 분야에서 국내 최고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2007년 한국인 최초로 싱가포르 중재원 이사, 2013년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법원 상임위원에 선임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김앤장 국제중재 및 해외분쟁 업무팀은 법조계 전문지 ‘글로벌 중재 리뷰’에서 세계 24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윤 변호사는 “한국 기업의 위상이 높아진 지금이 아시아의 중재 허브로 도약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 한국 기업인들은 아직 중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듯하다.

 “중재는 재판과 달리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 사건을 경험하지 않고는 기업 경영진도 익숙하지 않다. 한국은 국내총생산의 70% 이상을 해외 교역을 통해 올리고 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적 준비는 부족한 듯하다.”

 - 소송보다 유리한가?

 “반드시 국내 소송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속한 절차는 중요한 장점이다. 중재는 최종 판결까지 평균 1년 안팎이 소요된다. 대한생명 인수를 둘러싼 한화그룹과 예금보험공사의 중재는 조 단위 분쟁이었는데 판정까지 2년이 걸렸다. 대법원까지 갔다면 5년 이상 걸렸을 것이다. 용인 경전철 중재도 마찬가지다. 소송 5년이면 ‘녹슨 기계’만 남을 것이다. 기업가에게 시간은 돈 아닌가?”

 - 단심(單審)이어서 리스크가 커 보인다.

 “그렇다 보니 대응이 부족해 한국 기업이 외국에서 패소하는 일이 잦다. 어느 국가의 법률을 적용할지 결정하는 준거법 조항, 중재지 설정 등에서 명확한 논리를 내세워야 한다. 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분쟁을 뉴욕 법원에서 해결하도록 한 계약서를 본 적이 있다. 미국 기업이 소송을 걸어왔을 때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뻔한 것 아닌가?”

 - 기업인들이 유의할 점은.

 “한국 기업을 위해서는 한국을 더 많이 알리는 노력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한국을 아는’ 중재인이 많아야 한다. 유명 중재인 중에도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경우를 가끔 본다. 한국을 잘 모르는 중재인 앞에서, 그것도 외국에서 중재 절차를 밟는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서울에 국제중재센터가 설립된 만큼 무역 분쟁에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중재 시장을 키우고 공신력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2007년 싱가포르 중재원 이사로 선임돼 가보니 9인의 이사 중 7명이 외국인이더라. 심지어 원장은 호주인이었다. ‘국적 중립’만 봐도 신뢰가 가지 않나? 그동안 영국·미국이 주도하던 국제중재 분야에서 싱가포르가 급성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덕분에 싱가포르는 기업하기 좋은 국가,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된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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