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작가 유세 견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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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숫자로 계량할 수 있는 것이있고 숫자로 계량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계량할 수 있는 것은 5개년경제계획수출실적, 국민소득가계부, 서울에 임립한「빌딩」숫자와 농촌에의 투자액, 고속도로, 「시멘트」, 비료, 차관액, 곡가, 부실기업등이고 계량할 수 없는 것은 정치적·사회적신의, 양심과 책임, 도덕적 타락과 부정부패, 가치관, 「엘리트」의식, 유지들, 민주주의의 폭과 깊이, 고속도로의 의미, 가계부의 성격, 우리사회근저에 가로 놓여있는 문제등등이다. 계량할수 있는 쪽을 담당하는 것이 행정이고 계량할 수 없는 쪽까지를 포괄해서 담당하는 것이 정치가 아닐까.
이게 몇 년 만인가. 또 정치의 계절이 닥쳐왔다. 그리하여 신문사의 요청으로 춘향이의 고장 남원으로 내려갔다.
철로연변에는「코스모스」·들국화가 만발하고 기찻간 「라더오」에서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요. 외로워 외로워 외로워요. 한번만 한번만 다시 한번만 나에게 돌아와요-』간들어진 유행가가 만발하고 있다.

<행정없는 정치는 공소>
그리고 황금들판, 풍년이다. 이것은 행정의 차원인가 정치의 차원인가 생각해보며 혼자 실소를 머금는다. 결국에 가서 두 가지는 하나로 귀착된다는 생각에서다. 정치없는 행정은 근거와 밑받침이 약한 법이며, 행정없는 정치는 공소한 울부짖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남원에서는 뜻밖에드 김종필씨 일행과도 마주쳤다. 다른 강연회와는 달리 김종필씨의 설득은 절절한 것 같았다. 장소는 남원극장.
그의 절절한 호소는 설득력은 있었지만 어딘가 한정된 성격이었으며 안방에서만 통할 수 있는 뜻지(지)자 냄새를 풍겼다. 정치와 행정이 한 가닥으로 뒤섞여져서 줄달음치는 광장에서는 어차피 그들도 회오리 속에 휘어 감기게 마련인가 보았다. 하오1시반부터 남원여중고 운동장에서 벌어진 공화당 중진반의 유세를 들었다는 것은 필자 나름으로 뜻이 있었다라고 하는 것은 유세가「피크」에 오르면서 계량할 수 없는 쪽 보다는 계량할 수 있는 쪽으로 집중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일반 청중도 그런데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장경순씨등단. 그는 7·25담화가 나오기까지의 대강의 과정을 개괄한 다음 『요즘 야당들이 차관들여온 것을 여러분의 빚이라고 떠벌리고 있는데 마음들 푹 놓으십시오. 공공차관봅시다. 고속도로만 보더라도 그 사용료받아서 빚 물어주는 거예요. 여러분이 책임질 필요는 없는 겁니다.』

<차관일거양득론 펴고>
『차관은 들여올수록 좋은 거예요. 만일 6·25같은 사변이 날 경우 저의들 재산을 건지기 위해서라도 군대를 파견해 줄 겁니다. 경제·국방일거양득이예요.』『옳아, 참, 그렇겠네.』
『그렇구만.』-청중의 반응이다.
『또-상업차관봅시다. 남원사는 김서방이 전주공업단지에 공장을 짓겠는데 돈이 모자란다는 말이에요. 미국의 「존슨」이란 양반 만나서 돈 좀 돌려달라해서 꾸어 오는데 이건 물론 정부에서 보증을 서지요. 그러나 그냥 보증서주는 줄 압니까. 천만에, 그 돈의 2∼3배에 해당하는 재산을 저당으로 잡는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그것이 어째서 여러분의 빚이 됩니까.』
『또- 곡가 봅시다. 여러분 곡가 허니까 귀가 번쩍 뜨이지요?』청중들은 조용해진다.
유세 전후의 청중들의 대화도 귀에 들어왔다.

<유세장서도 살림걱정>
『아이갸, 왜 이렇게 안온디야?』
『점심 집에서 떠났디야.』
『날씨가 추워졌어.』
『온다 온다.』
『잘 났네.』
『의장 이라며?』
『부의장이랴.』
『잘 났네』-얘기는 다시 서울에 간 자식의 학비얘기로 돌아가는 것 같다.
『저두 배울라구 그랬싼디, 힘이 닿아야, 어떻게 뒤를 대 보지 않겠이여?』
『선생 노릇하면서 배우는 수도 있는 갑든데.』
『요샌 그것도 잘 없디야.』
단상의 연사는 계량되는 쪽으로만 얘기를 몰고 갔다. 밑의 청중들은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발등의 계량에서 마음을 돌리지 않는 것 같았다.

<최인훈|신민당, 조치원에서|찬반내색없이 열심히 경청|재담에는 홍소
장날이라한다. 조치원역 건물을 등에 지고, 정면 출입구릍 비켜서 마련된 연단위에서「민주주의」「자유」이런 낱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12시에 시작한 유세의 첫 연사다. 지구 신민당원인 변호사 성태경씨.
청중은 약 2백명쯤. 흐렸다갰다하면서 간간이 지나가는 비가 뿌리는 가운데 우산을 받치고 열심히 듣고 있다. 오늘, 공화당쪽 유세도 겹쳤다 한다.

<선심야유에 「와」웃음>
사회자가 올라가서 말한다. 『아까 제가 그쪽(공화당 유세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술한잔 얻어 먹고는 이쪽으로 올테니 염려말라고 합디다.』「와」하고 웃음. 서울서 올 연사는 유진산 김재광 두 의원이라고 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연단에 가까운 청중들 뒤켠에 소달구지를 끌 소가 한마리 열심히 듣고 있다. 가끔 하늘을 쳐다보는데, 탄식을 하는 건지 웃는 건지 물론 알길이 없다.
사회자 말대론지 어떤지는 영 알길없으나 차츰 사람이 불어간다. 서울연사들이 도착했다.유진산의원이 등단해서 연설한다. 개헌안 국회통과가 안될 말이라 한다. 『제사를 지내려면 집에서 할 일이지, 과부집 안방에 가서 하다니, 웬 말이냐』고 한다. 웃음들이 일어난다. 비유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손톱밑에 가시만 보지 말고 염통썩는 줄 알자』고 경제정책을 때린다. 5·16때의 옛 얘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북괴가 쳐들어 온다지만 이 집단안보의 세상에 대통령이 누가되고 안된대서 그들의 태도가 달라지겠느냐』고 한다. 『영구집권을 할 작정인데 우리는 한사코 막아서 민주유산을 남기자』고 한다.
『말 잘하누먼』
『옳은 말이여.』바로 옆에서 이런 말이 들린다.
돌아보니 괜히 시무룩해서 턱을 돌려 버린다. 농촌양반들이 겸연쩍을 때 하는 그 표정이다.
「옳다」뒤엔 겸연쩍어>
유진산씨가 내려서고 김재광씨가 올라간다. 그때 누군가 내 소매를 끄는 이가 있다. 그는 나를 한옆으로 데리고 간다. 아무데 사는 박원배라 하는 사람이라고 통성명을 한다. 신문사에서 왔느냐고 묻고는 그는 오징어에 생선 따위가 든 장바구니를 발밑에 내려놓더니 이런 말을 한다. -지난 6일과 7일에 어느 마을 공화당에서 계몽강연을 한 다음에 막걸리추렴을 냈더라는 것이다. -참석한 사람의 수·장소·한턱을 낸 사람의 이름을 주르르 가르쳐 준다.적어둬야겠기에 그가 부르는대로 적어 간다.
추석전에 읍직원이 반장이상 동서기에게까지 한 사람에 돈 얼마를 주었다느니, 어느 곳에서 무슨잔치가 벌어졌느니하는 소문이 많다는 얘기였다.
이 「앙가지망」속에서 한 비극이 일어났다. 방금 옆에서 얘기하던 사람이 땅을 가리키면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장 바구니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오늘이 장날이라서 그는 오는 김에 장을 봐 가지고 왔다. 얘기에 팔린 사이 장바구니가 간데 온데 없어진 것이다. 그는 한 군데만 빙빙 들면서 『어이쿠』소리만 한다. 잠깐 같이 어물거리다가 나는 슬그머니 그의 곁을 떠났다.
김의원이 아직 연설을 하고 있다. 청중은 처음보다 늘어 있다. 아낙네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차의 개찰시간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가 겹친다. 박수라든지, 옳소 소리는 없으나 열심히 듣고들 있다. 그들이 과연 이 자리에서 연사들을 통해서 얼마나 지식을 얻고 있는지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리라.

<날씨추워도 자리안떠>
이렇게 모일 수 있고, 그들의 대표와 한자리에 서있는 이런 시간의 경험이 귀중할 것이다. 이 궂은 날씨에 바람이 제법 쌀쌀한 속에서 이렇듯 열심히 서있는 모습이 아마 우리 모두의 모습이리라.
돌아오는 찻 속에서 나는 문득 아까 그 불행한 도난사건을 생각했다. 제발 그의 부인이 저 「소크라테스」나「립·밴·윙클」이며 그런이들의 부인같은 기풍을 가지지 않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이 세상일이 어찌 뜻같이만 되겠는가. 시절이 좋을 시면, 앞으로 그 실수를 다시는 거듭하지 않아도 될 장날이 연년세세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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