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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재배치 발언의 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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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지난 13일 미 의회에서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방침을 밝히면서 이것이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 측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럼즈펠드 장관을 만났던 당선자 방미 특사단 일행이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문제를 제안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왜 럼즈펠드 장관이 盧당선자 측의 제안을 핑계로 주한미군 감축 의사를 밝혔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한.미 양국 내 반미.반한 감정이 엇갈리면서 주한미군 감축.재조정 문제가 불거졌다는 점에서 한.미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삐걱거릴 가능성이 있다. 당면한 북한 핵문제 해결의 양대 축인 한.미 간 신뢰관계에 금이 가면 상황은 더 꼬이고, 자칫 다른 분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럼즈펠드 발언 의아스럽다"=럼즈펠드 장관의 발언 가운데 당선자 측이 발끈한 것은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를 盧당선자 측이 제안했다고 밝힌 대목이다. 럼즈펠드 말대로라면 원래는 주한미군 재조정에 별다른 계획이 없었는데 당선자가 이를 요구해 미국 측이 수용키로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 럼즈펠드를 만났던 인수위 윤영관 외교통일안보분과 간사는 "왜 우리가 뭘 제안한 것처럼 얘기했는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양국 간 협조가 잘 되길 바란다'는 盧당선자의 생각 등 일반론에 대해서만 얘기했고, 구체적인 제안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사단에 포함됐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말하고 있다.

다만 대표단은 럼즈펠드 장관이 주한미군 감축이 아닌 재배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도 "럼즈펠드 장관은 당시 당선자 측에서 보다 균형있는 한.미관계를 강조한 데 대해 주한미군의 재배치만 언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 때리기 위한 감축인가=대표단의 설명을 미뤄 보면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 가운데 '당선자 측 제안'은 그가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과도하게 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에 관한 전반적인 언급 내용은 당선자 측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盧당선자가 지난해 말 계룡대 방문 때 "주한미군 철수에 대비해야 한다"고 한 것이나, 13일 한국노총 방문 때 미국의 대북 공격 시나리오에 반발하면서 보인 부정적 대미 인식에 대한 맞불의 색채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략적 이해와 맞물려 있다는 풀이다. 전방 미군 부대의 후방 배치 언급은 그 예일 수 있다. 미국 내 강경파들은 북한 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대북 공격을 위해선 북한 장거리포의 직접적인 위협에 놓인 미 2사단을 뒤로 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주한미군 감축.재배치는 부대의 기동성 확보와 첨단무기 무장을 중시하는 그의 지론에 따른 것이거나, 미 지도층 내의 반한 감정을 배려한 것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의도야 어쨌든 럼즈펠드의 발언으로 주한미군 감축.재비치는 기정 사실화된 측면이 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를 주도하면서 속도를 낼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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