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독점자료, 국민과 공유 방안 내놓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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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04면

최수현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동 대학 행정학과 석사. 행정고시 25회. 재무부 이재국, 금융정책실 등을 거쳐 금융정보분석원장,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역임했다. 올 3월 원장에 취임했다.

금융감독원이 언제 조용했던 때가 있었으랴. 최근 몇 년만 봐도 저축은행 사태, 가계 부채 문제 등으로 항상 경제 이슈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런 금감원이 요즘은 더욱 뜨거운 감자다. 경제 현안에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이라는 조직의 명운이 걸린 문제가 겹쳤다. STX를 시작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은 또 금감원을 쳐다보고 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3월 취임 이후 첫 인터뷰

그래서일까. 취임 넉 달째인 최수현(58·사진) 금감원장은 지금까지도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지난주 그가 서울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들렀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그를 찾아갔다. 다음은 최 원장과의 일문일답.

3월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최수현 원장. [뉴시스]

내 화두는 금융의 지속 가능한 성장
-역대 금감원장은 각자의 화두가 있었다. 예를 들면 권혁세 전 원장의 화두는 ‘서민 금융’이었다. 최 원장의 화두는 뭔가.
“쉽지 않은 주제다. 분명한 건 지금 금융이 굉장히 어려운 때란 거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시장이 당장 출렁이는 게 문제가 아니다. 계속 성장해나가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다. 이걸 해결하는 게 내 화두다. 내부적으론 금감원을 확 바꿔 국민에게 되돌려줬다는 얘길 듣고 싶다.”

-금융회사들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가 들리긴 한다.
“심각하다. 은행 수익성이 너무 나쁘다. 2분기 실적이 1분기보다 더 떨어질 것 같다. 건전성이 위협받을 정도다.”

-그래서 최근에 수수료 인상 얘기를 꺼낸 건가.
“(손사래 치며) 논란이 지나치게 확대돼 당황스럽다. 수수료를 합리화해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올려야 한다는 말로 오해된 것 같다. 금융권의 건전성이 너무 걱정되니 수익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였다. 더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었다.”

-그게 뭔가.
“일단 금융회사의 자구 노력이 먼저다. 자체 경비를 우선 합리화해야 한다. 제일 주시하고 있는 건 금융지주 회장 임금이다. 다는 아니어도 일부는 연봉이 30억원 정도 된다. 성과도 없는데 그렇다면, 정말 지나치다.”

-금감원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무슨 얘긴가.
“사실 그동안 금감원이 국민의 시대적인 눈높이를 못 맞춰왔다. 국민이 금감원 직원에게 기대하는 게 뭔가. 윤리와 청렴성이다. 이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예를 든다면.
“그중 하나가 감사(監事)다. 옛날 선비는 어땠나. 관직을 물러나면 곧바로 낙향했다. 그런데 공직자가 은퇴하고 난 뒤 산하기관 감사로 나가니 좋게 보질 않는다. 부원장으로 온 뒤 많이 바꿨다. 많이 나갈 땐 한 해에 24명도 나갔는데, 2011년 3월 이후로는 금감원 출신 중 감사로 선임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소프트 프로페셔널리즘’ 갖춰야
-‘국민 품 속의 금감원’을 생각하면 ‘금융 검찰’이라는 표현은 별로 안 좋아할 듯싶은데….
“그 표현은 검찰 조직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 별로다. 그렇지만 금감원은 검찰처럼 권위가 있어야 한다. 나는 ‘소프트 프로페셔널리즘(soft professionalism)’이란 표현을 쓴다. 권위를 가지되 부드럽게 풀어나가라고. 금감원은 업무 성격상 남들이 어려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제재권을 행사하느냐는 것이 핵심 아닌가.
“제대로 일하려면 그에 부응하는 권한이 필요하다. 금감원이 일을 잘하려면 검사권과 제재권은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

-대통령 지시로 금융소비자보호원이 금감원에서 독립되는 분위기다.
“(한참 생각하더니) 민감하다. 감독 업무와는 또 다른 부분이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데엔 100% 동의한다. 조직 이기주의처럼 비칠 수 있어 더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

-금소원 분리를 반대하는 직원들에게 ‘우선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는데, 무슨 뜻이었나.
“말 그대로다. 아직 우리의 노력, 소비자 보호의 정성이 부족하니까 밖에서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것 아니겠나. 앞으로도 더 정성을 기울여 일하면 시장이나 소비자도 알아주지 않을까. 난상가란(卵上加卵)이란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계란 위에 계란을 포갠다는 말이다. 얼마나 어렵겠느냐. 이 정도 정성을 보여야 소비자들께서 ‘금감원이 열심히 하는구나’ 하고 이해해 주지 않을까.”

-정성을 기울이되 구체적인 지향점이 있어야 할 텐데.
“어려울 때일수록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건 정보 공개다. ‘숨기지 말라’고 항상 얘기한다. 키코(KIKO), 저축은행 사태… 다 터지고 나서야 알았다. 지금 위기 사전인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금감원만이 갖고 있는 고급 정보를 활용해 위기 징후나 단골 민원을 사전에 인지하는 거다. 그러면 선제 대응을 할 수 있을 걸로 본다. 또 금감원이 독점하고 있는 감독 자료를 국민과 공유하는 안을 조만간 발표할 거다. 감독 자료는 공공 재산이다. 권위의식을 벗고 나누겠다.”
 
구조조정 기업 오너, 갖고 있는 걸 내놔야
-기업 구조조정 얘기를 좀 해보자. STX 구조조정을 보면, 속도감이나 장악력에서 금감원이 국민 기대에 못 미친다는 느낌이다.
“사회가 바뀌었다. 업무 방식이 과거 재무부 시절과는 다르다. 권력이 집중되지 않고 분권화돼 있다. 시중 금융회사 목소리도 커졌다.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듣고 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지난 정권의 민영화 바람 때문인지 STX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국책은행의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산업은행은 시중은행이 아니다. 법으로 설립된 국책은행이다.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설립 목적에 맞게 기업 구조조정에 협조해야 한다.”

-몸을 사리지 말라는 건가.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다.”

-STX팬오션을 보자. 금감원은 살리고 싶어했지만, 산업은행이 두 손을 들면서 결국 법정관리로 갔다. 감독 당국의 리더십이 추락한 게 아닌가.
“구조조정은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팬오션 역시 ‘살릴 가치가 있으면 살린다’는 원칙에 따라 평가했고, 이견이 생겼다가 조정된 것일 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 오너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건가.
“오너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가지고 있는 걸 다 내놔야 한다. 구조조정이 뭔가. 사회가 손실을 분담하는 측면이 있다. 주주와 채권기관도 손실을 보기 때문에 오너 역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구조조정 기업의 모 오너를 만났을 때도 얘기했다. ‘돈 갖고 있습니까. 가진 것 있으면 내놔야 합니다. 혹시 해외에 갖고 계십니까. 제가 반드시 조사해서 다 찾아낼 겁니다.’”

-STX 그룹 얘긴가.
“특정 개인을 언급하는건 적절치 않다.”
 
집값 폭락 안 하면 가계 부채 관리 가능
-가계 부채의 큰불이 잡혔나.
“일단 양적인 측면에선 견딜 만한 수준이다. 단, 전제가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지만 않으면. 우리 가계 부채는 고소득층에 70%가 몰려 있다.”

-질적인 내용이 문제 아닌가.
“취약 계층이 걱정이다. 350만 명의 저신용자를 어떻게 할 거냐…. 그래서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 같은 노력이 나오는 거다. 가장 중요한 건 가계 부채 문제가 부동산 시장과 직결돼 있다는 거다.”

-최근에 HSBC 소매금융, 골드먼삭스자산운용이 한국에서 짐을 쌌다. 한국 금융시장이 신통치 않아서인가.
“우리 시장의 문제라 보지 않는다. HSBC는 지난해 이후 태국·일본·러시아에서 철수했다. 반대로 기회를 찾아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은행도 있다. 최근에 인도·필리핀·아랍에미리트 은행들이 한국 진출을 협의 중이다.”

-우리 금융회사는 왜 해외에서 돈을 못 벌어오나.
“발상을 바꿔야 한다. ‘국내도 어려운데 뭘 나가느냐, 나가봤자 깨지기밖에 더 하느냐’는 생각이 업계에 만연해 있다. 규제도 만만찮다. 구체적인 방안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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