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탈 벗을 「소 연정」|사민·자민당 제휴의 서독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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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의 사민당과 자민당이 제휴하여 「소 연정」을 구성함으로써 20년의 전후사상 처음으로 사민당이 집권하고 기민당이 당의 자리로 물러났다.
지난달 28일의 총선거에서 4백96개의 의석 중 2백42석으로 원내 제일당이 된 기민당이 된 기민당은 총선거 전부터 무르익어 온 사민·자민 양당의 우호 「무드」를 끝내 깨뜨리지 못하고 「아데나워」이래의 장기집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사민·자민의 소연정이 가능했던 것은 ①66년 가을 자민당이 「에르하르트」를 수상으로안 기민당과의 연정을 탈퇴한 이후 보수적인 지도자 「에리히·멘데」가 물러나고 「발터·셸」의 지도하에 방위 노선을 약간 「좌선회」한 것 ②지난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자민당이 사민당후보 「하이네만」을 지지한 것 ③「마르크」 평가절상·조세정책을. 둘러싼 기민당과 사민당의 대립이 격화하여 「대 연정」의 존망이 불가능해진 것 ④일반국민들이 야당 부재속의 「대연정」의 존속에 싫증을 느낀 것 등의 사정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민당과 자민당은 이미 각료 안배까지 끝냈는데 당츠의 예상대로 주요 「포스트」인 수상은 「브란트」(사민)외상 「셸터」(자민), 경제상「월러」(사민) 등으로 낙착되었다. 이렇게 해서, 서독은 「셸」 외교와 「쉴러」경제정책으로 70연대를 맞게된 셈이다.
서독의 총선거가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것도 기민당 전제하의 「브란트」 외교냐, 사민당 지원 하의 「셸」 외교냐, 그리고 「마르크」평가 절상을 주장하는 「쉴러」 경제정책이 계속될 것이냐의 여부가 이 선거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동일한 방향으로 설정된 「브란트」「셸」 외교를 점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은 총선거를 전후한 「셸」의 「모스크바」 방문, 「브란트」와 「그로미코」회담 (뉴요크) 등이다.
총선거를 앞두고 소련은 은근히 「브란트」의 사민당과 「셸」의 자민당을 지원, 격려했다. 서독국민들은 국토분단이라는 현실 때문에 서독이 국제정치무대에서 운신이 부자유스러운데 일종의 좌절감을 느끼고있다.
이런 판국에 소련이 사민·자민 양당에 보인 우호의「제스처」가 서독국민들에게는 답답한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비쳤을 수 있다.
「브란트」·「셸」외교가 소련의 기대를 어느 만큼 만족시킬 것인가. 그리고 그를 통해 서독국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사민당과 자민당의 외교노선, 특히 구 동구정책이. 기민당의 그것에 비해 훨씬 현실주의적이라는 것만은 사실이다. 예컨대「브란트」나 「셸」은 「키징거」나 「슈트라우스」와는 달리 핵확산금지조약의 조인을 찬성하고, 「오데르·나이세」선을 사실상 승인하여 동족을 포함한 동구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그들은「할슈타인」원칙을 고수하는 한 서독은 진정한 외교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모두 소련·「폴란드」를 비롯한 모든 동구권의 대독불신을 해소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또 하나 소련이 기대를 걸고있는 것은 동서구를 망라한 「유엔」 안보회의의 소집인데「브란트」와 「셸」은 이미 이런 종류의 회의를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소련은 그동안 「드골」과의 제휴를 서구정책수행의 발판으로 삼았다가 「드골」이 물러난 뒤 「파트너」를 잃었다. 여기서 그들은「브란트」에 착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국은 「브란트」·「셸」 내각이 그의 구공시(EEC) 가입의 문호를 적극적으로 열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사민·자민 양당을 합친 원내의 의석이 과반수 선보다 불과 6석이 더 많다는 약점 때문에 정책의 강력한 수행에 장애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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