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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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침 상 머리에서 아내가 『오늘 이 무슨 날 인지 아세요?』하고 불쑥 묻는다. 『글쎄 무슨 날인데?』하고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출근시간이 늦을세라 서둘러 밥을 먹노라니 『우리 결혼 1주년이에요』하고 서운한 듯 뾰르통하다. 『그래, 벌써 그렇게됐나?』하고 싱거운 대답을 남기고 출근하고 말았다.
○…한나절이 지나자 연애 시절엔 그렇게 자기만을 위해주던 내가 오늘처럼 뜻깊은 날에 풀죽은 꼴로 어물어물 하는 태도가 혹시나 자기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가 아닐까하고 걱정할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꺼림칙 했다.
○…오늘 아침 아내에게 결혼 1주년이란 말을 들었을 때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아내가 늘 입고싶다던 빨간「원피스」였다. 또 함께 외출을 하면 저녁 식대다, 영화 관람료다 쓸 돈이 얼마만큼 일까, 계산을 했다. 이어 나의 빈약한 호주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 어물어물한 나의 태도를 아내가 알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루 잘먹기 위해 사흘 굶는 바보 노릇은 하지 말자고 아내와 굳게 약속했지만 오늘만큼은 그 약속을 접어두고 가불을 해서라도 아내의 「원피스」와 영화구경과 식사도 함께하며 처녀시절의 그 발랄한 아내의 모습을 꼭 보고싶다. <박중현·부산시 수정1동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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