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美 8軍 사령관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미국 내 반한(反韓)기류가 갈수록 심상치 않다.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표면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CBS방송의 간판 시사프로 '60분'은 지난주 '양키 고 홈'이란 자극적인 표제로 한국 내 반미운동을 새삼스럽게 부각했다.

시청앞 광장에서 대형 성조기가 찢어지고, 거리에서 폭행당한 미군 장병의 증언을 들을 때만 해도 "돌출행동을 갖고 저렇게까지…"하는 아쉬움이 컸었다.

충격적인 것은 찰스 캠벨 미8군사령관의 눈물이었다. "나는 좀체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래도 주둔해야 합니까"하면서 그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미국을 욕하는 노래는 차마 가사를 전해드릴 수가 없습니다"는 말과 함께 "김정일보다 부시가 더 무섭다"는 우리 젊은이들의 코멘트들도 이어졌다.

이 '장군의 눈물'에 미국 시청자들이 '욱'했던 모양이다. 방송이 나간 뒤 CBS방송은 물론 유엔주재 한국대표부와 총영사관에 "한국전쟁 참전을 후회한다" "주한미군을 철수시켜라" "한국상품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항의전화와 e-메일이 쏟아졌다고 한다.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반미감정을 놓고 설전이 벌어지고, 반미시위에 충격받아 현대차 구입계약을 취소하거나 한국차 판매점에 돌팔매질을 하는 미국인들도 없지 않다고 한다.

두 여중생을 애도하는 뜨거운 눈물에 비하면 미군사령관이 눈물을 찔끔거린 것이 뭐 대수냐고 할지 모른다.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는 얼마전 KBS 대담프로에 나와 평화적 시위 속에 일부 숨겨진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문제라며 "살인미군 물러가라"며 성조기를 불태우고 일부 유흥업소 앞에 '미국인 출입 사절'까지 나붙은 데 정말 마음이 상한다고 했다. 주한미군은 시설과 막사의 노후로 근무여건이 열악해 충원마저 여의치 않은 처지여서 미군사령관의 심정은 남다를 수도 있다.

이들 돌출행동은 물론 확대해석돼서는 안된다. 문제는 그 아래 깔려 있는 껄끄러운 저류(底流)다. 한.미동맹이 '바닥에서 금이 간'것으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특사의 미국 방문이 '재앙에 가까운(a near disaster)'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미국 쪽 분위기다. 엊그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주한미군 철수 논의의 공식화 역시 이런 저류와 무관치 않다.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은 인계철선(trip-wire) 기능이다. 침략을 받으면 미국의 자동 개입을 유도하는 연결고리다. 대다수가 비무장지대(DMZ) 부근에 주둔함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상당수를 후방으로 빼고 공군력과 해군력에 더 중점을 두겠다고 한다. 우리 군으로 이 공백을 메우면 되지만 대내외에 미치는 심리적 여파는 무시하지 못한다.

더구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세계 투자가들에게 한국의 안정을 보장해주는 상징이다. 우리 주식시장의 38%를 이미 외국인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서울에 근거지를 정할 때 지금도 서울의 미국대사관과 얼마나 가까우냐가 우선 고려대상임은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다. 수도권 미군의 존재가 주권국가의 체면을 손상시키고 주민들과의 마찰 등 부작용이 적지 않음에도 이를 유지해온 것은 안보상의 이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북핵위기의 와중에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공식화된 것은 두 나라 모두에 비극이다. 우리 입장에선 북한의 핵보유도, 전쟁도 둘 다 막아야 한다.

이는 한.미 및 국제공조의 틀 속에서 외교로 풀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대결구도 속에 '우리만의 결심'은 경제에 어려움 정도가 아니라 경제 기반 자체를 뒤흔들 위험이 있다.

남에게 안보를 의존하고, 나라 경제가 대외요인에 발목잡혀 있는 상황에서 '당당한 자주외교'는 자칫 벌거벗은 임금꼴이 되기 십상이다. 미군사령관의 눈물이 우리에게 폭풍을 몰아오는 일이 없도록 대미 신뢰관계 복구에 국가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변상근 논설고문

<바로잡습니다>

◇2월 17일자 35면 칼럼 '美 8軍 사령관의 눈물'중 인용됐던 찰스 캠벨 미8군 사령관의 코멘트 가운데 '이래도 주둔해야 합니까'부분은 캠벨 사령관의 말이 아니고 리포터 밥 사이먼의 코멘트를 잘못 인용한 것이기에 이를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