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사는 방법 가르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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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전혀 새로운 대학이 될 겁니다. 저부터 신입생이란 각오로 시작하니까요."

다음달 문을 여는 녹색대학(www.ngu.or.kr)의 장회익(張會翼.65) 초대총장은 "한국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인 위계질서부터 타파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張총장은 벌써 학교에서 자신을 총장이라고 부르지 말고 '샘(선생님의 준말)'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해 놓은 상태. 관사도 학생 기숙사 옆에 있는 조그마한 흙집으로 대신할 생각이다.

張총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30년 넘게 모교 강단에 서온 석학이다. 하지만 張총장의 삶은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물질에 대한 그의 고민은 모든 개체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온생명'의 개념에 이르렀고 이후 환경문제로 관심의 폭을 넓혀 새만금사업 반대 등 환경운동을 벌여왔다. 교육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2001년엔 "신입생을 받지 말고 국립대를 총괄하는 대학으로 거듭나자"는 서울대 개혁론을 펼쳐 교내에서 '반골'로 몰리기도 했다.

이런 그이기에 6개월 남은 서울대 정년퇴임이라는 영예를 뒤로 한 채 녹색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그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반성없이 흘러온 우리 대학과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어 이같은 결심을 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가 이처럼 자신감을 내보이는 이유는 녹색대학이 국내 최초의 대안대학이기 때문이다. 홍순명 전 풀무농업고 교장, 이병철 귀농운동본부장 등 환경운동가들이 2001년부터 터를 다져온 이 대학의 설립 취지는 '일방향적인 교육에서 탈피, 교수와 학생이 함께 인류를 구할 대안문명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수와 학생 모두가 경남 함양군에서 자급자족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학생들에겐 재량껏 등록금을 내게 하는 등 독특한 운영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신입생은 선발시험 없이 합숙을 통해서만 뽑는다. 수업방식도 기발하다. 세분화된 전공 탓에 기존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너른 세계관을 길러주지 못한다는 판단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통틀어 8개 학과만 뒀다.

그나마도 학기 당 한 과목씩만 맡게 되는 교수들의 강의가 모두 대안문화 전반을 다루는 것이어서 학생들은 전공에 관계없이 수업을 받을 수 있다. 張총장의 '물질.생명.인간'이란 강의도 그중 하나다.

이런 점들 때문인지 신입생 가뭄에 시달리는 다른 지방대들과 달리 녹색대학은 지원자가 몰려 1백명인 정원보다 50명이나 초과해 신입생을 선발해야 했다.

이같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녹색대학의 앞길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폐교를 고쳐 강의실.도서관 등 수업에 필요한 시설을 마련했지만 각종 편의시설은 아직 마련하지 못한 것도 그 중 하나다. 또 새로운 시도인 만큼 다양한 개성을 지닌 구성원들의 의견을 조율해 공동체 생활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張총장은 "재정 문제는 후원자들의 도움과 절약을 통해, 의견 상충은 열린문화 창출을 통해 극복하겠다"며 "정말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우리 녹색대학 사람들이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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