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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곳 ④] 렌터카로 둘러보는 오키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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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키나와의 하늘은 맑아서 아름다웠다. 낮에는 새파랬던 하늘이 저녁에는 새빨개졌다. 일몰이 곱다는 선셋비치에서

최근 일본 여행의 핫 트렌드는 단연 렌터카 여행이다. 일본에서 지난해 한국어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렌터카가 나오면서 일본 여행 시장 판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문제는 아직 남아 있다. 일본의 운전방향은 우리나라와 반대다. 여행기자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드라이브 여행을 해봤지만, 아직 일본에서 운전대를 잡아보지 못한 건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시도를 했다. 렌터카 여행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는 오키나와(沖繩)에서 처음 운전대를 잡았다. 한적한 휴양지여서 번잡한 도쿄·오사카보다 운전이 훨씬 편하겠다고 기대했다. 사실은 일정에 쫓기기 않고 오키나와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한껏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좌우 바뀐 운전석 … 몇번 실수하니 금세 적응

2 오키나와의 바다는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바다였다. 오키나와 본섬 북부 고우리지마 해안에서.

출발하기 전에 국제운전면허증부터 발급받았다.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가 운전면허증과 사진, 그리고 7000원을 주니까 바로 면허증이 나왔다. 유효기간 1년. 1년 사이에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이 면허증으로 운전을 할 수 있다.

오키나와 나하공항에 도착해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팻말을 들고 서 있는 렌터카 회사 직원들이 보였다. 렌터카 회사가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해 자동차 키를 받았다. 제주도에서 렌터카를 빌릴 때와 모든 절차가 같았다. 일본어가 안 돼도 큰 불편이 없었다. 일본 여행의 불편사항 중 하나가 영어 소통인데, 적어도 렌터카를 받을 때는 영어가 통했다.

한국어 내비게이션은 양호한 편이었다. 한국어를 선택하자 화면에 나오는 모든 지명이 한국어로 바뀌었다. 다만 목적지를 입력할 때만 한국어가 지원되지 않았다. 대신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목적지가 나타났다. 전화번호가 없는 해변은 영어 이름을 넣었다. 공항에서 영어 지도를 챙기길 잘했다. 안내방송도 한국어로 나왔다. 목소리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정확한 한국어였다.

마침내 자동차를 끌고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는 오른쪽 차로를 달리지만 일본은 왼쪽 차로를 달린다. 운전대도 반대방향에 있다. 운전대가 반대방향에 있으니 모든 게 반대쪽에 있었다. 우회전 방향지시등을 켜려고 핸들 왼쪽 키를 올렸더니 와이퍼가 삐거덕거리며 작동했다. 왼손으로 기어를 넣는 일도 처음엔 영 어색했다. 코너를 돌 때가 역시 문제였다. 서울에서 운전하던 습관이 남아 있어 코너를 돌아 나온 자동차는 꼭 반대편 차선을 향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동차는 제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여기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자동차는 함부로 끼어들지 않았고, 앞차가 머뭇거려도 경종을 울리거나 위협하지 않았다. 양보와 배려가 몸에 밴 일본인은 방향감각을 잃은 한국인 운전자의 실수를 기꺼이 눈감아줬다. 오키나와 본섬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58번 국도에 올라탄 순간, 티 없이 파란 오키나와의 하늘이 비로소 시야에 들어왔다.

미군 통치 영향, 도시 모습은 캘리포니아풍

3 한국어가 나오는 내비게이션
4 오키나와 사람들의 장수 비결이 숨어 있는 전통 밥상.

역시 자동차를 빌리길 잘했다. 모든 일정이 내 마음대로였다. 일몰이 예쁘다는 서부 해안부터 찾아갔다.

우선 류큐무라부터 들렀다. 오키나와의 옛 풍경을 재현해 놓은 류큐무라는 우리나라의 민속촌 같은 곳이었다. 오키나와의 옛 이름이 류큐다.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 땅이 아니었다. 인종도 다르다. 일본 본토 남자보다 오키나와, 아니 류큐 남자가 키가 작고 털이 많다. 오키나와 여자들은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선명해 미인으로 유명하다. 일본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가 오키나와 출신이다. 그러고 보니 오키나와는 장수촌으로도 유명하다. 맑은 공기와 자연식 식단이 장수의 비결일 터이다. 류큐무라에서 받은 전통 밥상에서 오키나와의 장수 비결을 짐작할 수 있었다. 류큐무라에서 류큐 전통의상을 빌려 입은 한국인 신혼부부를 만났다. 맞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들어 가장 인기 있는 허니문 여행지가 오키나와다.

서부 해안선을 따라 달려 아메리칸 빌리지로 들어갔다. 이름에서 눈치를 챘고,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미군기지가 있는 마을이었다. 언뜻 미국의 캘리포니아 해안이 연상됐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어느 빌리지를 본떠 마을을 조성했다고 했다.

일몰이 예뻐 이름에도 일몰이 들어간 선셋비치에는 일본인만큼 미국인도 많았다. 다들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해질 녘 서쪽 바다는 붉게 물들었다. 아니, 물이 든다는 표현은 한참 모자랐다. 하늘을 뒤엎은 붉은 기운은 세상을 삼켜버리는 듯했다. 석양을 등지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노는 10대 남녀에게 눈길이 머물렀다. 가이드북에는 60m 높이의 대형 관람차가 아메리칸 빌리지의 상징이라고 나와 있었지만 서울로 돌아와 들여다본 사진 파일에는 미군기지 들어선 마을에서 배회하는 청춘의 모습만 담겨 있었다.

가슴 답답할 때 위안 주는 에베랄드 빛 바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건 1879년이다. 미군은 전쟁이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72년 5월까지 오키나와를 점령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신이 류큐인이라고 주장하고, 오키나와 도시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닮았다. 이 낯선 분위기를 이국적이라고 불러야 하나. 일단은 오키나와 풍이라고 적어둔다.

일출이 보고 싶어 이튿날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섬 남쪽 치넨으로 달려갔다. 검은 구름이 수평선에 걸쳐 있어 일출은 장쾌하지 않았다. 그래도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일본에 열 번 넘게 왔는데 일출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섬 남단에 있는 평화기념공원에 들렀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서 지상전이 벌어졌던 유일한 장소다. 3개월간 전투가 이어졌는데 민간인 사망자만 10만 명이 넘었다. 그 역사를 기린 공간이 평화기념공원이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한국인도 1만 명 이상 죽었다. 한국인 위령탑이 공원 안에 있었다.

평화기념공원에서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작은 해수욕장이 눈에 띄었다. 핸들을 틀어 바로 내려갔다. 오키나와 배경의 일본 영화와 소설이 수두룩한데, 모두가 이 바다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오키나와 열도의 에메랄드그린빛 바다, 그 찬란한 물색 때문이다.

오쿠다 히데오(奧田英朗)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는 찌든 도쿄의 삶을 청산하고 오키나와 열도로 내려와 사는 가족의 이야기이고, 기타노 다케시(北野武)의 영화 ‘소나티네’에는 삶의 마지막을 오키나와 바다에서 끝내려는 야쿠자 보스가 등장한다. 궁지에 몰린 인생이 끝내 선택하는 곳에는 오키나와의 바다가 있었다.

지도에 나오지 않는 작은 해수욕장에서 실컷 바다를 바라봤다. 가까이서 보는 바다는 맑았고, 수평선 쪽 먼바다는 쪽빛으로 일렁였다. 햇빛이 내려앉은 바다는 파도가 움직이는 대로 눈부신 춤을 췄다. 『남쪽으로 튀어!』에서 열두 살 소년 지로는 산호초 둘러싸인 오키나와 열도의 바다를 보며 ‘뭔가 속 터지는 일이 있으면 스르르 풀려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두 살 소년의 마음과 같았다. 바라보기만 해도 위안을 주는 바다를 오키나와는 품고 있었다.

오키나와 사투리 중에 ‘난쿠루나이사(なんくるないさ)’라는 게 있다.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뜻으로 오키나와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라고 하기에 오키나와의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섬을 헤집고 다니며 바다만 보다,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다 돌아왔다.

●여행정보=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오키나와 직항 노선을 운행한다. 인천공항에서 오전 9시40분 출발해 오키나와 나하공항에 오전 11시 55분 도착한다. 오키나와에서는 오후 1시 출발해 인천공항에 오후 3시20분 도착한다. 인천~오키나와 2시간20분 안팎은 도쿄~오키나와 비행시간과 비슷하거나 20분쯤 짧다. 오키나와는 규슈 남단에서 약 685㎞ 떨어져 있다. 규슈보다 대만이 더 가깝다. 오키나와 여행은 여름을 피하라고 권한다.

오키나와의 7월은 너무 더웠다. 겨울 평균기온도 16도가 넘는다. 아시아나항공 일정에 따라 여행박사(www.tourbaksa.com)가 오키나와 자유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3박4일 여정에 63만8000원부터(왕복항공권·숙소·조식·여행자보험 포함). 숙소와 출발 날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렌터카 요금은 따로 내야 한다. 렌터카 요금은 차종에 따라 다르다. 도요타 소형차 비츠 3일 대여요금이 1만5900엔, 1500cc 준준형급 코롤라 악시가 2만900엔이다. 기름값은 휘발유 1ℓ가 150엔(약 1800원)으로 서울보다 약간 싸다. 070-7017-2238.

글·사진=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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