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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무덤뿐인 4백년옥토|50여생명 앗아간 구룡산밑 창원군용강·용암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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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창원=안기영·김택용기자】한꺼번에 50여명이 떼 죽음 당한 경남창원군 동면 용강리와 용암리의 초가마을은 하루아침사이에 자갈밭이되었다. 산수박의 주산지인 이두마을은 4백년을 대대로 오손도손 살아온 해주오씨마을. 지난15일 새벽3시 마을뒷산인 구룡산이 노하듯 『우르르·쾅』하는 소리와 함께 허물어지면서 추수를 눈앞에 둔 마을은 금시에 바윗덩이와 사태에 뒤덮인 것이다.
17일 군경예비군들은 마을의 자갈밭에서 시체를 발굴하고 있었으나 마을사람들은 말을 잃었고 눈물마저 메말랐다. 지난14일밤 10시께부터 천둥·번개와함께 내린폭우는 불과 몇시간만에 5백mm의 물벼락을 쏟아놨다. 15일 새벽3시쯤 갑자기 천지를 진동시기는 듯 『우지끈,꽝』하고 때리는 순간 흑탕물에 뒤섞인 돌덩어리의 홍수가 마을에 쏟아졌다. 용하게도 마을의 높은 곳에 자리잡아 8식구가 고스란히 살아남은 박정오씨(50)는 『마치 수없는 「탱크부대가 지축을 흔들며 마을을 삼키는 것 같았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마을은 삽시간에 자갈밭의 무덤이됐다. 『어머니! 사람살려』라는 비명마저 폭우와 돌홍수에 묻혔다.
누구 한사람 목숨을 건져낼 엄두도 낼수없었다. 저마다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떤사람들은 돌홍수에 휘말려 2km이상이나 밀려내려가 바위·돌등에 온몸이 찢겨 신원조차 밝혀낼수 없었다. 이소용돌이 속에서 오종갑씨 가족4명, 안성윤씨(43)가족7명등 3가구가 몰살됐고 62동중 46동이 전파, 49명이 죽었다.
마을 한가운데를 집채만한 바윗덩이가 그대로 뒹굴고 계곡을 이룬마을엔 솥밥그릇등 세간과 고무신·우산등이 흩어진가운데 사람과 송아지의 시체가 묻혀있었다.
16일하오 1시 부산갔다 혼자살아남은 오갑출씨(42)는 폐허가 된 마을에 돌아와 부인의 시체가 발굴되자 흙투성이가 된 아내의 얼굴을 빗물로 씻어주며 통곡했고 용암리에서 발굴된 윤형식씨(45)는 딸을 꼭 부등켜 안은채 숨져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기적은 있었다. 도필근씨(24·농업)는 14일밤10시 만삭의 부인 김여인(23)이 심한 진통을 일으켜 엉겁결에 아내를 엎고 외딸 영희양(3)을 안으며 집뒤 둔덕으로 달려나갔다. 아내 김여인은 15일새벽1시께 폭우속에서 아들을 순산했으나 2시간후에 집은 그만산사태속에 허물어져 나갔다.
17일 바위와 돌덩이사이에서 아직도 많은 시체를 찾지도 못하고있는 참극-. 이비극의 산사태를 몰아온 구룡산은 아홉마리의 용이 하늘로 득천했다해서 해주오씨가 처음으로 발붙인 상서로운 산으로 알려져왔다.
용강리와 용암리는 해발6백m의 구룡산이 뒤로병풍을 치고 산수가 좋아 농사로나마 어려움없이 살아온 마을이었다.
마을의 80%가 오씨 일가족, 나머지20%가 안씨등 타성받이였으나 타성도 모두의척으로 일가를 이루어 남이라곤 없다. 이마을 노인들은 이곳에 터를 잡아 14대째 살아오는 동안 매년사당제를 지내왔었는데 3년전부터 마을청년들이 미신이라해서 폐지한 것이 산신의 노여움을 사게된 것이라 믿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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