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귀가 도보천리|정성태 의원 어제 서울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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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광주에서 서울까지 천릿길을 3선개헌을 반대하는 뜻으로 도보「데모」에 나섰던 신민회소속 정성태 의원 (55) 일행은 11일 하오 광주를 떠난지 12일만에 서울에 닿았다. 천릿길을 그 옛날 과거 길의 괴나리봇짐대신 가벼운「룩작」하나를 동에 진 그는 손에 태극기와「트랜지스터·라디오」 하나를 달랑 들고 걸었다.
정의원은 도보 길에 나서그 보니 그의 할아버지가 과거 길에 오르던 생각이 났다고 했다. 지난1일 그가 지난 임실에서 정 의원의 할아버지는 바로 그곳에서 산적을 만나 괴나리봇짐을 빼앗기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웃었다.
전주에 닿은 것은 2일밤 8시쯤. 그가 전주시내에 들어서자 이상스럽게도 가로등이 갑자기 꺼져버리더라고 했다.『오비이락이라고 할까.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했었다』고 정 의원은 부은 발목을 만지며 말했다. 전주를 떠나 금마에 이른 것은 3일 저녁.
옛날 삼한시대 마한의 수도였던 그곳을 지날 땐 감개가 무량하였다고. 시골길을 걸을 땐 주민들이 길에 나와 냉수를 떠다 줬는가 하면 지나가던「버스」운전사는『수고하시오』손짓을 하며 피우던「파고다」한 갑을 달리는 차창 밖으로 던지고 지나가더라고 했다. 이미 소문이 퍼진 모양인가, 전주에서「마라토너」배승호(24)씨 등 2명이 합세, 서로 지껄이며 한결 쉽게 걸었다고.
논산 길에선 선술집에 들어가 목을 축이니 주인 노인이 막걸리 값을 받지 않아 돈을 손에 쥐어 주고 나왔다. 『그런 대로 시골인심은 좋게 느꼈다』고 말했다. 하루평균 90리씩 걸어 5일이 지나니 발이 부르터 고통스러웠다. 정 의원의 제의로 1시간씩 걷고 쉬어가기로 했다.
걷다가 한번 앉으면 일어서기가 힘들어 서로 눈치만 살폈다. 정 의원의 담배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신호로 다시 말없는 행진은 계속됐다는 것. 대전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걷다가 「라디오] 에서 신민당해체 「뉴스」를 들었다고. 여기서 용기 백배하여 대전에 닿은 날이 지난6일. 시민들은 정 의원 일행이 큰 구경거리나 되는 듯 따라다니며 구경했다.
정 의원 등은 호지명 사망도「라디오·뉴스」를 듣고 알았다. 수원 못미처「쑥고개」에서 양말을 벗고 물집이 생긴 발에 약을 바르고 있으니까 행인이 약을 주고 지나가더라는 것.
서울에 들어선 11일하오 4시30분쫌 시흥동 지점에서 그는 대기중인 경찰에 의해 차에 태워져 종로구 삼청동 157의 70 자택에 실려갔다. 퉁퉁 부은 발을 절룩거리며 그는『미국「킹」목사의 민권행진은 말할 것 없고 인도「간디」의 소금행진도 이렇진 않았을 텐데』 하며 강제로 그의 집에 옮겨진 것을 안타까와했다.
정 의원은 12일 아침 국회에 출석, 야당의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정 의원이 외상을 치료한 두발을 붕대로 감은채 「슬리퍼」를 신고 국회에 나오자 송원영·박영록 의원 등은 『고생 많이 했다』면서 그를 맞았고 이에 대해 정 의원은『나의 천릿길 행진이 개헌저지에 한치의 도움이라도 주었다면 만족하겠다』고 한마디.『시흥에서 도보가 중단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한 정 의원은 행진 도중 어린 학생들까지도 손을 G흔들어 격려해 준 것이 제일 감격적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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